일반 초상화는 그림을 의뢰한 사람을 화가의 아뜰리에로 초대하거나 뒷배경이 가장 멋진 장소에서 그림을 제작한다.
의뢰인의 외모와 부와 명예를 최대한 돋보이게 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한스 홀바인이라는 이 화가는 뭔가 다른 초상화를 그렸다.
뒤러와 함께 홀바인은 독일 르네상스 화가중 가장 뛰어난 화가이다.
그의 아버지 또한 화가였으며 당대의 일류 인문주의자들과 깊은 교류를 나누었다.
그의 그림은 하나같이 그가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 그림은 [게오르크 기제의 초상]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초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초상화가 다른 초상화와 다른점을 여러분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 주변에 여러 가지 도구들이 놓여 있다는 점이 여느 초상화와는 다르다.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아이크의 그림에서도 생활 소품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지만 홀바인의 초상화 만큼 집요하거나 의도적이지는 않다.
그림의 의뢰인인 게오르크 기제는 명문가의 젊은이이다.
그의 의상과 그의 사무실에 놓여 있는 값비싸고 특이한 물건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홀바인은 이런 명문가의 젊은이를 왜 이런 잡다한 물건들과 함께 그렸을까? 다른 여느 초상화처럼 화려한 휘장이나 멋진 풍경이 어우러진 배경이 아닌 이런 독특한 배경을 만들었을까?
그림을 다시 한번 자세히 보자. 사무실 벽에는 이러한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고통 없는 즐거움은 없다(Nulla sine merore voluptas)' 이 젊은 상인의 가치관을 엿볼수가 있다.
이제는 화려한 페르시아 융단이 깔려 있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꽃병을 보자. 아름다운 유리병에는 약혼을 상징한다는 카네이션이 꽂혀있다.
이 의뢰인은 자신의 초상화를 사랑하는 여인에게 구혼의 의미로 보내려는 것 같다.
그리고 가죽끈으로 묶여있는 책이나 필기구, 안경과 반지, 돈과 도장, 저울 등은 그가 명문가의 아들로서 상인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렇게 홀바인은 인물의 생활과 생각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장소를 선택했으며 인물의 소품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말없는 초상화에 언어를 부여했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아뜰리에에서 전시장으로 옮기게 되면 아뜰리에에서 느꼈던 느낌과는 다른 느낌으로 바뀌어진다.
그 장소가 갖고 있는 저마다의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던 홀바인은 초상화에서의 배경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던 것 이다.
인물의 겉모습과 함께 그 인물의 생각과 생활상까지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초상화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