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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박사의 성경 바로 읽기] <14>창세기 1장의 언어(III)

New York

2002.08.2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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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1절의 묘사는 1장 전체에 대한 요약이라기보다는 문자 그대로 ‘샤마임과 아레쯔를 만드셨다’는 뜻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 아레쯔는 ‘아직 텅빈 지구’로서 물과 어둠에 둘러싸인 것이며, 1절의 샤마임(정관사가 있다) 또한 물과 물 사이를 가르는 창공(‘라키아’)의 다른 이름인 ‘샤마임’(6∼8절과 그 이후)과는 다른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본다.

창세기 1장 전체를 통하여 샤마임이라는 히브리어 낱말은 모두 10회 나타난다. 처음으로 출현하는 1절의 샤마임은 정관사를 가지고 있지만, 두 번째 출현하며 물과 물 사이를 가르는 창공(라키아)의 다른 이름인 8절의 샤마임에는 정관사가 없다.

9절에서는 창공(라키아)의 다른 명칭인 샤마임을 받아 정관사를 붙여 ‘그 샤마임’이라고 일컫고, 14, 15, 17, 20절에서는 이 샤마임을 1절의 샤마임과 구분이라도 하기 위해서 ‘라키아 샤마임’이라고 일컫고 있다. 그리고 26, 28, 30절에서는 이미 혼동의 우려가 없으므로 단순히 ‘공중(샤마임)의 새’라고 부르고 있다.

이처럼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샤마임은 1절 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둘째 날 지음 받은 라키아 또는 라키아 샤마임을 가리키는데, 이는 사실상 1, 2절의 아레쯔에 속한 것이다. 1절의 샤마임은 아마도 ‘넓은 우주 공간, 은하계, 영계’ 등을 포함하는 또 다른 ‘하늘’을 가리키지 않을까

추측하건대, 창세기 1장 1절이 묘사하는 바는 ‘하나님이 천상계와 원초적 지구를 창조하였다’는 것이요, 2절부터 창조 기사의 관심은 장차 인간 세계의 중심이 될 아레쯔 곧 지구로만 쏠린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2장 4절에 이르러 창조 기사는 또 한 번 초점을 옮겨 인간과 그 주거 환경의 창조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더 상세한 묘사를 시도한다.

우리는 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 샤마임의 용례를 통하여 1절의 샤마임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어느 정도 옳다는 것을 입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샤마임의 샤마임’이란 표현이 단순한 샤마임과 나란히 쓰인 예들이 있는데 (신명기 10:14, 열왕기상 8:27, 역대하 2:5, 6:18, 느헤미야 9:6, 시편 148:4) 이들은 샤마임의 샤마임이라는 표현이 라키아 샤마임과는 다른 창세기 1:1의 샤마임을 의미함을 어느 정도 시사한다고 하겠다.

참고적으로 느헤미야 9:6은 이렇게 읽고 있다. “오직 주는 야웨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와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하늘의 군대가 주께 경배하나이다.” 바울이 언급한 바, ‘셋째 하늘’ 곧 ‘낙원’(고린도후서 12:2, 4) 역시 이러한 샤마임(히브리어로 복수형임)의 하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신구약 성경에서 샤마임은 하나님의 처소로서 묘사되기도 한다(신명기 26:15, 열왕기상 8:30, 이사야 63:15, 마태복음 6:1,9). 따라서 하나님은 종종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신다 (창세기 24:3,7, 역대하 36:23, 요나서 1:9, 에스라 1:2, 5:11,12, 6:9,10, 7:12,21,23, 느헤미야 1:4,5, 2:4,20, 시편 136:26, 다니엘 2:18,19,37,44).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공중 곧 라키아 샤마임이 하나님의 처소로 불릴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위의 구절들에서 말하는 샤마임은 창세기 1:1에서 언급한 샤마임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창세기 1장에 대한 몇 가지 언어학적 고찰을 시도해 보았다.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언어가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언어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언어에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그 사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도구가 언어이기에 우리는 무엇보다 면밀한 언어학적 고찰을 통하여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상의 몇 가지 언어학적 고찰과 해석에도 결함이나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번 창세기 언어를 통해 필자는 몇 가지 신학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 뿐만 아니라 천상계와 원초적 지구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는 인간 세상의 창조를 중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둘째,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는 시간적 틈(gap)이 있을 수 없다. 창세기 1장 2절에 묘사된 원초적 지구의 상태는 ‘혼돈’이 아니요 단지 ‘정리되지 아니하고 텅 비어 있는 상태’를 가리킬 뿐이다.

마지막으로 창세기 1장의 ‘날’(욤)은 우리가 사용하는 24시간과 동일하다고 본다. 이를 보다 긴 시간이나 시기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창세기 1장의 기록 전체에 대한 불신을 의미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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