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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칼럼] 조선 팔도이름의 유래

Washington DC

2013.08.21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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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때 팔도(8도)의 구분은 5백여년 동안 사용하다가, 고종에 이르러 그 곳 지역이 넓은 함경/평안/충청/전라/경상의 다섯개 도를 후에 각각 남북으로 나누어 총 13도가 이 때에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 8도를 그대로 두고 남북으로만 나누어 놓았으니 “팔도강산”이라는 말이 낯설지만은 않다.

옛 조선의 8도는 당연히 지역의 경계를 의미하고 마을 이름에서 생겨지게 되었는데 즉, 경주와 상주라는 마을의 머리 글자를 따서 경상도가 되었고,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를 합 한것이며,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 함경도는 함흥과 경흥,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 경기도는 양주와 광주를 의미하는 양광도라고 불렀으나 후에 서울, 즉 경성에 가깝다고 하여 경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옛 조상님들이 우리나라를 8도로 나눌때에는 산이나 물(강)을 기준으로 나누었는데,
경계에 따라 풍토와 사람의 성질이 상당히 다른것도 사실이다.
조선조 22대 왕인 정조와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는 규장각 학자였던 윤행임 사이에 주거니 받거니 하며 평을 내린 8도 인물에 관하여 각 지역마다 다른 성격의 인물론을 이야기 하였다고 전해 지고 있는데,
대원군은 말하기를 “조선에는 나라를 망치는 세가지가 있다”고 하였다고 한다.
예전부터 나온 8도의 평을 읽다보면 조선시대 때나 지금이나 “지역차별”이 있음을 예상케 한다. 다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관계로 이곳에는 띄우지 않는것이 좋겠다.

8도 외에 지금의 서울에 있는 청계천은 풍수지리적으로 서울의 명당수(明堂水)에 해당 되는데, 경복궁의 뒷쪽에 위치한 백운동 계곡에서 시작되어 북악산, 인왕산, 그리고 남산 등의 여러 물줄기를 모으고 서울의 중심을 지나 중랑천에서 합해져 한강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조실록의 문헌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를 찿아 볼 수가 있다.
“이 하천은 명당인 경복궁의 양쪽, 삼청동과 청운동에서 시작하여 서쪽에서 동쪽으로 사대문의 복판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빠져가는데, 모든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가다 바다로 가는것에 비해 이 하천만큼은 명당에서 시작하여 거꾸로 동쪽으로 흘러
들어가니 참으로 명당수(明堂水)라 할 수있다”

지금 서울의 광교, 수표동, 관수동등의 명칭은 모두 청계천과 연관이 있는데, 조선조 태종 때부터 이곳을 “하천을 수리하여 열었다”고 하여 개천이라 불렀는데 “청개천”이 “청계천”으로 바뀐 사연은 세종때 시작한 제방 공사가 영조때 끝이 났는데, 제방 공사가 끝난 후에 영조가 직접 광교에 나와 돈을 다리위에서 아래로 풀어 아이들이 먼저 줍게 하고 또 다시 뿌려 많은 백성들이 나누어 갖게 한 후에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 그 이후에 깨끗한 개천이라 하여 “청개천”으로 다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미국에 살면서 내가 태어난 한국의 수도 서울, 항상 가보고 싶은 서울.

이태조를 도와 조선 창건의 공신중 한명 이었던 무학대사가 수도를 세울 명당을 찿아 조선 팔도 방방곡곡을 헤메어 다니다가, 지금 현재의 서울에 이르러서 보았더니 이 지형에 내린 눈이 마치 울타리처럼 보였다고 해서’눈 (雪)’ 이 만든 울타리라고 불른것이 후에 서울이 됐다는것이 정론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책을 보면서 나 혼자 많은 상상도 해 보았지만, 조선 말기에 한 선비가 인왕산 계곡에서 청계천을 보며 읊었다는 시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 지고 있는데, 그 시 한수를 통하여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바라 보시던 청계천을 상상 해 본다.

"북쪽 시내의 맑은 물은 그늘을 늦게 펼치는데
떨어지는 꽃잎은 파란 이끼위에 소복하게 쌓여 있노니
인간 세계에 있는 봄의 색은 어디로 갔으며 찿을 수 는 있겠는가
천하의 영웅호걸도 이 곳에서 만큼은 한 잔 술 기울이고 갈 곳 이라네"

Bernard Kim
703-342-2194
www.agentkimrealt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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