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선 롱아일랜드 컨서버토리(LIConservatory)학장. 그는 요즘 뉴욕 한인사회에서 가장 ‘뜨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음악과 미술, 어학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 원장이던 그가 지난해 11월 2년제 음악대학 인가를 받아냄으로써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 9월 28명의 학생으로 첫 학기를 시작한 그는 하버드대 바디마인드 과학연구소 디렉터로 재직중인 조지 스테파노 교수를 이사장으로 영입하는등 내로라는 미국 대학교수들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사진을 구성해 나가고 있다. 게다가 내년 한국에서 오는 유학생들을 맞을 채비하랴, 정부기관에 그랜트를 신청하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한인 학부모들은 물론, 미국 음악교육자들 사이에서 그는 시쳇말로 ‘떠오르는 별’ 이다.
주립대학들마저 음악학과를 축소하거나 교수를 감축하고 있는 판에 김학장은 반대로 음악대학인가를 받아내고 줄리아드나 맨해튼, 메네스음대 같은 명문대학들에 도전을 선언하고 나섰으니 그럴만도 하다.
뉴욕커들에게 롱아일랜드 컨서버토리(LIConservatory)란 이름은 아직 생소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학교도, 거대한 캠퍼스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에 대해, 혹은 자녀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학부모들 사이에선 LIC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정도다. 미국인 학부모들, 공립학교 교사들사이에서도 LIC는 이미 음악전문학교로는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가 됐다.
백만장자들이 모여 사는 곳, 우수 학군이 밀집돼 있는 금싸라기 땅 낫소 카운티에서 백인들이 추천하는 음악학교가 한인여성에 의해 설립됐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92년 음악·미술·입시전문학원으로 출발한 리즈마(LISMA)를 10년만에 34여명의 교수진을 비롯, 1백여명의 강사진과 1천여명의 수강생을 거느린 LIC 음악대학으로 키워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남다른 ‘억척스러움’에 힘입은 바 크다. 탱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밀어부치는 추진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어린 학생들을 직접 데리고 국제 음악경연장을 찾아 다니며 해외연수를 시키고, 유능한 교수들을 유치하기 위해 동구권을 찾아다니며 교수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는 ‘극성’을 보였다.
4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긴머리에 모델 뺨치는 세련된 차림새, 청산유수같은 말솜씨….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그가 이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학장이라고 여길 사람은 많지 않다.
바이올리니스트로 한때 국제무대에 설 꿈에 부풀어 있었던 김민선 학장.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미련없이 버리고 교육자의 길을 택했다”는 그를 학장실에서 만났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꿈을 접고 교육자의 길로 접어 든 셈인데 미련이 없습니까.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요.
“연주자의 꿈은 제 스스로 포기한 겁니다.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도 음악공부를 계속하려 했지만 너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한계를 빨리 느꼈어요. 평생 연주자로 살기가 쉬운 일도 아니고…89년 교회 성가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겁니다. ”
-남편은 물론 친정(김준철 박사·청주대 재단이사장) 이나 시댁(김운용 국제올림픽조직위원) 뒷받침 없이는 힘들었을텐데요.
“맞습니다.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권유한 적이 있었지만 학교를 버릴 수는 없었어요. 친정부모님들은 원래 교육자이셨으니까 제가 연주자보다 교육자의 길을 택한 것에 대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셨고, 시부모님들도 흔쾌히 승낙해주셨어요. ”
-LIC가 음악대학, 혹은 예술대학으로 성장하려면 현재 운영중인 SAT, TOEFL, ESL 프로그램들은 어떤식으로든 정리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수익사업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테고요….
“저는 정리하는 것보다 오히려 키워야 한다고 봐요. 컬럼비아, 존스 홉킨스, 롱아일랜드(C.W. 포스트), 스토니 브룩 같은 데도 그런 프로그램 다 있어요. 학생들이 주로 유럽이나 동구권, 아시안학생들 많아 이중언어(ESL)나 토플 클래스는 반드시 필요해요.
또 학생들이 이론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이중언어교육 같은 프로그램도 꼭 있어야 하구요.”
-대학으로서 육성해 나가려면 재정자립이 우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식으로 충당하실 것인지요.
“이미 정부에 보조금(그랜트)를 신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또 머시 같은 비영리기관들에도 지원요청을 했습니다. ”
-재단 핵심 멤버가 외국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한인 이사진을 영입할 계획이 있으신지요.
“한국분들도 그런 능력 있으면 얼마든지 모실 생각입니다. 전문직 종사하시는 분이나 학교를 위해 노력과 시간을 낼 수 있어야겠지요. ”
-미국 교육제도에 대한 한인들의 이해의 정도가 큰 편차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사회에서 음악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국 사람들이 유별나게 음악이나 미술교육에 신경을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음악을 전공하려는 학생이 아닌 보통 학생들에게 있어서 음악교육의 비중을 어느 정도 두는 게 적당하다고 보십니까.
“우리 학교 학생들 가운데 70% 정도가 외국인입니다. 롱아일랜드의 경우 대부분 학교에도 오케스트라는 있지요. 그만큼 음악교육이 보편화돼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한국에는 그런 제도가 없지만 뉴욕주에는 니즈마(NYSSMA·New York State School Music Association)라는 음악평가시험이 있어요. 일반 학생들의 음악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제도인데 대학 갈 때 크레딧을 인정 받을 수도 있는 제도예요.
음악교육은 악기 연주를 잘하는 스킬을 기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감정을 순화시켜줄 뿐 아니라 사고력과 인내심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고 봐요”
김민선 학장은 큰 꿈을 꾸고 있다. 2년제 대학에 만족하지 않고 빠른시간내에 4년제로 승격시키고 더 나아가 종합대학으로 키우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국제적인 음악경연대회를 여는 것이다.
-그 꿈이 언제쯤 이루어 질 거라고 보십니까.
“4년제 대학 승인을 받는 것은 꼭 시간에 비례 하는 건 아니예요. 필요한 교수진과 등록 학생수만 충족되면 큰 문제는 없어요. 도서관시설 같은 부대시설이 있어야 겠지만 그건 재정적인 문제니까요. 빠르면 3∼4년후에도 가능하겠지만 한 10년 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