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도전, 과수원 일궜다
창간 기획-농부가 된 한인들 <1> 늘푸른농장 김종일 사장
주렁주렁 달린 것이 얼마나 맛있던지…그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
배농사를 시작한 지 10여 년 만의 결실이었다. '한국 배를 미국 땅에서 재배해보자'는 일념만으로 시작한 늘푸른농장 김종일(63) 사장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중부 뉴저지 해밀턴타운십에 있는 늘푸른농장은 1998년 그렇게 시작됐다. 총 400에어커 규모의 늘푸른농장에선 현재 배를 비롯해 포도.사과.복숭아.감.대추.밤.모과.매실 등 10여 종의 과일이 재배되고 각 과일 종류 당 연간 평균 30만 박스의 출하량을 기록하며 300~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뉴욕과 뉴저지는 물론 워싱턴DC.버지니아.노스캐롤라이나.사우스캐롤라이나.조지아.플로리다주 등 동부 지역을 비롯해 시카고와 LA.샌프란시스코.시애틀까지 납품되고 있다. 일부는 캐나다까지 수출된다.
이 정도면 늘푸른농장은 미국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과수원 중에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데 많은 고비를 넘겨야 했다. 한국 배를 미국에서 심어보자는 야무진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희생이 따라야 했다. 김 사장은 "그 동안 겪은 시행착오을 말하려 하면 밤새도 다 못한다"고 했다.
1년 내내 흙에 묻혀사는 김 사장을 만나 밤을 새도 모자랄 그 동안의 역경을 들어봤다.
1984년 뉴욕으로 이민 온 김 사장은 퀸즈 서니사이드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여느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야채가게부터 택시운전 봉제공장 등 웬만한 노동일은 다 했다. 그러다 김 사장이 야채가게를 다니면서 한가지 알게 된 건 미국에는 한국 배가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배는 한국 배와 생긴 모양부터 달랐고 맛은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 배나무를 미국 땅에 심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지만 생계를 위해 하던 일을 그만 둘수는 없었다. 결국 한국에서 배나무 묘목을 들여와 뉴욕주 업스테이트 오렌지카운티의 한 부지를 빌려 심은 뒤 일요일마다 가서 관리를 했다. 하지만 기후가 맞지 않아 얼마 후 그 곳에서의 농사를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첫 도전은 실패했다.
그러나 배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김 사장은 봉제 기술이 있던 아내와 함께 주 6일을 일하며 돈을 모았고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으로 중부 뉴저지에 10에이커 규모의 땅을 샀다. 그 곳에 배나무를 다시 심었다. 두 번째 도전이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세 식구가 일요일마다 가서 농사를 지었다. 다행히 기후가 맞아 3년 만에 배가 열렸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그 해에 가뭄이 들어 수확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큰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또 로컬 과수원이라는 이유로 제 값을 받지 못해 팔지도 못했다.
"배가 크게 달렸고 맛도 있는데 한 박스에 8달러만 쳐준다는 거야. 생산비도 안 남는 가격이지. 그렇게 그 해도 손해만 봤지."
김 사장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배따기를 시작했다. 사과 피킹처럼 뉴욕에서 사람들을 모아 중부 뉴저지까지 데리고 와서 배를 따도록 한 것이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농장은 커져 갔고 배나무도 1500그루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번엔 원인 모를 병에 나무들이 죽어나갔다. 김 사장은 "13년 동안 오로지 농장 위해 살았는데 실패만 하니까 정말 의욕을 잃게 됐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배농사를 아예 포기하려고 마음먹었던 김 사장은 1년에 한 번 열렸던 한 농업 교육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다. 그 곳에서 병의 정체를 알게 됐다. '파이어 브러시'라는 병이었다. 사과에도 생기는 병인데 병든 모습이 마치 불에 탄 것처럼 보인다해서 파이어브러시라고 불리는 병이었다. 그러나 치료법은 없었다. 무조건 이 병에 걸리면 그 나무를 잘라내고 버려야 했다. 그래도 김 사장에겐 또 한번의 기회였다.
그 후 김 사장은 그 부지를 포기하고 지금의 늘푸른농장 자리로 옮겨 다시 시작했다. 처음엔 140에이커로 시작했고 인근에 250에이커 정도의 부지를 더 구매해 농장을 넓혀나갔다.
이제 김 사장은 미국 기업에 납품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도 전국 규모로 납품하고 있지만 모두 한인과 중국인 마켓이다. 김 사장은 올해 배가 수확되면 대형 수퍼마켓 체인인 홀푸드(Whole Foods)에 한국 배를 납품할 예정이다.
김 사장은 "어느정도 서류로 진행이 됐고 지금은 최종 계약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며 "일단은 뉴저지 지역 4개 지점에 납품하는 걸로 윤곽이 잡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커멓게 그을린 김 사장의 얼굴에 환한 희망의 미소가 번졌다.
신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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