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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사람은 혼자서는 못 산다 - 박상수

Atlanta

2013.10.03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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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누구나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서로 기대어 협조하고 도우고 어울리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 필자가 항상 우리 애틀랜타 교민이 뭉쳐야 잘 살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빈말이 아니고 진실이다. 누구나 주위에 가족, 친척, 친구가 있고 한국 사람이 있기에 알게 모르게 덕을 보지만, 그들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산다.

필자가 어쩌다 사랑하는 내 나라를 두고, ‘아메리칸 드림’만 가지고 미국에 이민왔다. 꿈을 깨고 다시 뒤돌아갈 수 없어 권총차고 애틀랜타 흑인타운에서 그로서리를 경영하다가, 1992년 애틀랜타 흑인폭동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그 후로 이제 사람을 상대하는 업종을 청산하고, 말못하는 동물을 상대하는 업종을 찾아 나선 적이 있다.

필자는 한국 경기도 설악에서 16만5000평에 달하는 목장경영을 한 경험이 있다. 천평에서 가평 가는 국도변에 20만여 평의 닭농장도 같이 운영했다. 물론 필자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시켜서 했지만, 어쨌건 목장 경영을 한 경험이 있어 애틀랜타에서도 축산을 해보려고 찾아 다녔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애덴스(Athens)에 어느 농가였다. 그 집은 자식들이 모두 외지에 나가 늙은 노인들이 이상 더 거기서 살수 없어서 팔려고 내놓은 것이었다. 집은 궁전같이 넓었고, 120헥타르 크기의 땅에 소 100여두가 있었다. 여기에 어지간한 농기구며 살림살이 전부를 합쳐서 50만달러를 요구했다. 목장에는 연못이 있고 평지에 풀이 잘 자라 소 먹이 걱정도 없고, 너무도 마음에 들어 이 목장을 살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곳은 목장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혼자 살기에 너무 적적했다. 무엇보다도 제일 겁나는 것이 백주에도 누가 와서 사고를 쳐도 말려줄 이웃이 없고, 무슨 사고가 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어보였다. 게다가 현지인 아닌 동양인이 외로워서 살수없을 것 같아, 이웃에 한국 사람이 한 집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이웃이 될 박상철 씨에게 같이 가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다. 그러나 그분은 달리 계획이 있다고 거절했다. 결국 같이 살 이웃을 못구해 목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곳이 내 나라였다면 무엇이 문제일까만, 그 아까운 에덴스 목장을 포기하고 캄보디아에 갔다. 그곳 사람들과 말은 안통해도 같은 피부색이라 거기서 사업을 오래했다. 이처럼 외국에 살려면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지, 혼자는 못산다. 뭉쳐야 힘이 있고, 숫자가 많아야 살기가 수월하다. 무리는 어울려서 살아야 한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외롭지 않아야 제 능력을 발휘할수 있다. 같은 애틀랜타 한국사람들끼리 서로 아무 도움이 안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얼마나 잘 뭉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변할 수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가 우리를 비하하는 발언을 종종 한다. 1975년 내가 처음 미국에 이민왔을 때는 동양인만 봐도 “한국사람아니냐”고 물어보았다. 한국 사람이라면 마치 멀리있는 친척을 만난 양 서로 반가워서 인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애틀랜타 한인들끼리 서로 보고도 인사가 없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고 성낸 얼굴 표정을 하고 째려본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면 좋으련만 그런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외국 사람은 서로 만나면 ‘하이’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한다. 우리 애틀랜타 한인들도 서로 만나면 인사만이라도 하는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이웃과 친하게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외국에서 우리 그렇게 살아보자. 서로 사랑하고, 혼자서 살기보다는 어울려서 사는 삶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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