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에서 필을 연기한 컴버배치는 벌써부터2022 오스카상 후보 0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몬태나주이지만 뉴질랜드에서 촬영했다. [Netflix]
김정의 영화 리뷰
자연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인간들의 대소사는 자연의 어떤 관심도 되지 못한다. 다만 추억이 깃든 곳곳에서 인간은 상념에 빠지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괴로움과 외로움에 울고 몸부림칠 뿐이다.
거대한 산맥과 끝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는 1925년 몬태나주에도 그 몸부림들이 있다.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두 형제 필(베데딕트 컴버배치)과 조지(제시 플레먼스). 그러나 두 사람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순한 성격에 매력 없는 동생 조지에 비해 형 필은 엄청난 자아의 소유자이다. 마을 카우보이 공동체의 리더인 필은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다. 그의 카리스마는 위압적이고 불친절하며 복잡하고 잔인하다.
필의 나르시시즘에는 여성이 끼어들 공간이 없다. 어쩌면 그는 동성애자인지도 모르겠다. 조지가 이혼녀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결혼하여 여자를 집안에 끌어들인 사실에 분노하며 필은 로즈와 그녀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를 적대시한다.
로즈는 필이 같은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그가 마루를 걸어가는 소리만으로 로즈는 압도당하고 그녀의 심신은 파괴되어 간다. 점차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가는 엄마를 바라보는 피터의 시선에서 영화는 심리 스릴러로 전환된다.
피터는 ‘여성 같은 남성’이다. 앙상하고 구부정한 그는 남과 여, 단 두 가지만으로 인간의 성별과 역할을 규정하는 카우보이 시대의 멸시와 조롱을 받는다. 카우보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있는 피터를 바라보며 필은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지난 9월,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제인 캠피온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이 작품은 1993년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피아노’에서 경험했던 ‘캠피온식 페미니즘’의 연장선에 있다. 28년 동안 진화해온 캠피온의 페미니즘은 이제 남성의 세계를 향하고 있다. 그녀는 남성성의 비밀스러운 신화를 카우보이 필에게서 찾고자 한다. 감독은 강인한 남성성으로 치장한 필의 압도적 존재감은 결국 상처에서 연유한 그만의 몸부림이란 것을 구현해 내고자 한다.
남성만 있는 카우보이들의 세계, 게이였음을 드러내지 못했던 1920년대의 시대 상황은 필을 더 터프한 남자로 위장한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연인을 칭송하며 슬픔에 잠기고 오래된 감정을 간직함으로 안정을 느끼는 외롭고 고통받는 남자이다. 그러나 정작 필의 기묘한 독성은 피터에게서 발휘된다. 결론부의 반전을 기대하시라.
“내 유일한 생명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시편 22장의 성경 구절이 의미심장하게 마지막 장면에 떠오른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악의 세력이 농후한 세상의 상처받은 영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서부로 간 ‘피아노’의 감독 캠피온은 그녀의 페미니즘을 이어간다. 남성 없는 페미니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