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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유월을 보내며

Los Angeles

2022.06.3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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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 사이트는  
전사자에 대한 간단한  
기록을 갖고 있었다
큰오빠 이름을 적으니
육군 제6사단 소속…”
 
지금 대서양을 건너 6400마일 떨어진 유럽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나에게 전쟁이라는 단어는 6·25, 아버지, 큰오빠 그리고 큰오빠가 살다가 떠났고 내가 자랐던 후암동 집과 연결되곤 한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72년이 됐다. 5월 마지막 월요일이 미국의 메모리얼데이였고 6월 6일은 모국의 현충일이었다. 미국과 한국의 호국 영령을 기리는 기념일이 일주일 간격으로 지나갔다. 성조기와 태극기도 대문에 걸지 않은 채,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연휴를 지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LA국립묘지가 있다. 6·25 때 한국전에서 안타깝게 전사한 젊은이들에게 보속하는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서울 현충원에 있는 큰오빠의 빈 묘지에는 봉사자들이 태극기라도 꽂았을까?
 
큰오빠는 6·25전쟁 때 전사했다. 집안에는 그의 전사에 관한 문서가 최근까지 없었다. 집안의 역사를 알고 있는 부모님들, 올케언니, 둘째 큰오빠는 이 세상에 없고, 이제야 관심이 생긴 나는 실상 그들이 생존했던 당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우울을 씹고, 또 되씹고 살았던 집안 분위기 때문에 피해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6·25전쟁 참전 용사 초청 기념식이 LA총영사 관저에서 열린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기념식에 초청된 살아남은 사람들, 그것도 LA에 사는 분들이 몇 분이나 될지 궁금하다. 전쟁 당시 20대였으면 지금은 90대 노인일 것이다. 그분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그리고 나는 큰오빠 전사에 대한 기록을 찾고 싶어졌다.  
 
전쟁기념관 정보 사이트는 전사자에 대한 간단한 기록을 갖고 있었다. 이름을 써넣으니까 큰오빠는 육군 제6사단 소속, 중위, 장교, 6·25전쟁 군번 15348, 생년월일 (빈칸), 출생지 서울, 전사 일자 1950년 8월 21일, 전사 장소 경북, 연고자 (빈칸), 명비 위치 115-ㄴ-029 등의 정보가 나왔다. 무척 중요한 정보였다. 그가 속했던 부대와 군번, 전사한 날짜…. 이 얼마나 귀중한 내용인가. 이를 인쇄해 놓고 싶어서 프린트 앱을 눌렀더니 일종의 인증서가 컴퓨터에 떴다. 사진 칸은 비어 있었고, 위에 적은 내용과 함께 밑줄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호국 영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추모합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고, 제일 하단에는 빨갛고 큰 글씨로 ‘전쟁기념관’이라 적혀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그의 짧았던 삶의 마지막을 한 페이지에 정리한 내용이다. 그는 전쟁에 나간 후, 두 달도 되기 전에 전사했던 것이다. 이제 나는 그의 기일을 안다. 그를 위한 연미사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큰오빠는 제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전사했고 나는 그 의미를 뒤로 한 채, 그저 그를 기억하려 애쓴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위키백과가 전하는 16개국의 참전 군인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도 오빠처럼 아내와 어린 자식들, 부모 형제가 있었을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참전했던 미국 용사들의 나이는 평균 17세에서 24세이었다고 한다.  
 
그들을 존경하고 기리는 뜻에서, 이참에 각 나라에서 파병되었던 그리고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지만 그들은 한낱 숫자에 지나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 합산하기 전에 일, 즉 하나라는 숫자 하나하나가 얼마나 뜻깊은지 모른다. 정말 이 숫자 하나하나가 젊은 군인 한 사람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16개국 우호 국가에서 총 1,719,597명의 군인이 투입됐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한국 1,090,911명, 미국 480,000명, 영국 56,000명, 캐나다 25,687명, 터기 14,936명, 오스트레일리아 8,407명, 필리핀 7,420명, 태국 6,426명, 네덜란드 5,322명, 콜롬비아 5,100명, 그리스왕국 4,992명, 뉴질랜드 3,794명, 에티오피아 3,518명, 벨기에 3,498명, 프랑스 3,421명, 남아프리카공화국 826명, 룩셈부르크 83명이었다.
 
이들 중에 한국 군인 149,005명, 미국 군인 36,574명이 전사했다. 실종, 포로, 부상자를 합친 16개국 젊은이들을 합치면 15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남긴 유족이 아내와 한 명의 아이였다고 치면, 총 300만 명이 가장 없는 가정에서 아프고, 힘들게 살았다고 풀이할 수 있다. 또 부모까지 가족에 넣어서 계산해 보면 600만 명이 된다. 이들이 북미, 남미,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호주 여섯 개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아물지 않는 전쟁의 상처를 안고, 힘든 세월을 보내었을 것이다. 그들이 가난하게 살지 않았기를 바란다.
 
큰오빠가 중학교 시절에 동생인 둘째 오빠와 부모님, 외할머니와 사진관에서 찍은 듯 보이는 흑백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 외 다른 오래된 흑백 사진들을 보았다. 성인 시절의 큰오빠 사진은 찾지 못했다. 폐허가 된 후암동 집 사진, 아무도 웃지 않고 찍은 가족사진, 폭격에 살아남은 어린 밤나무 가지를 잡고 카메라를 향해 서 있는 어린 나를 본다. 옛 시청 건물이 멀찌감치 보이는 광장에서 흰색으로 보이는 와이셔츠 상의에 소매를 걷은 채, 팔장을 끼고 미소 짓고 계시는 아버지도 본다. 이 사진 속의 아버지는 젊고 핸섬하시다.  
 
이젠 그만 접어야 하겠다. 큰오빠에게도, 자신의 서재가 있고, 자신의 영이 쉬고 있던 그가 마지막 숨 쉬던 집(후암동 집)을 잊으라고 해야 하겠다. 그 집은 나의 집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곳을 아주 오래전에 아버지랑 함께 떠나지 않았던가. 아버지도 나도 한국을 떠난 지 반세기가 된다. 또 아버지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  
 
잔인한 달, 6월은 지나가고 있다. 이제 큰오빠와 한국에서 마지막 숨을 쉬던 16개 나라의 젊은 영령들을 위해, 연미사를 신청해야 하겠다.

전월화(모니카 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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