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로프의 감기‘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20개월의 가택 연금이 풀리고 나서 만든 영화로 2021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됐다. [Strand Releasing]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러시아의 봉준호다. 러시아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비범함을 발견해내고 이를 토대로 영화를 만든다. 봉준호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것처럼, 그도 국가의 감시 대상이다. ‘페르로프의 감기’는 그가 20개월의 가택 연금이 풀리고 나서 만든 영화로 2021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됐다. 세레브렌니코프 감독도 봉준호처럼 칸이 주목하는 감독이다. 러시아의 전설적 록커 빅토르 최의 음악과 청춘을 그린 영화 ‘레토’가 2018년 칸영화제에 초청됐지만 가택 연금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최근작 ‘차이코프스키의 아내’도 지난 5월 2020년 칸영화제 경쟁작으로 출품됐다.
‘페트로프의 감기’는 스토리 구성과 스타일 면에서 상당히 특이한 영화이다. 여러 개의 플롯과 앞뒤가 맞지 않는 내러티브, 그만의 스타일로 결론을 맺는다. 그의 영화들은 대체로 완결성 면에서 비판을 받지만 탐미적 측면에서 극찬을 받는다.
영화는 플루에 감염된 자동차 정비사 페트로프가 타고 있는 새해 전야의 만원 버스 안에서 시작한다. 달리던 버스가 시민들의 소요로 멈춰 서고 경찰들이 그에게 총을 쥐어준다. 즉석에서 총격대가 조직되고 그 앞에 끌려온 정부 관료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논리와 설정이 무시되는 영화의 전개 방식, 페트로프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추운 겨울의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이후의 에피소드들은 플래시백, 꿈의 시퀀스 등의 형태로 이어진다.
소비에트 이후의 러시아. 겉으로 보기에는 각자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일상의 연속인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대단히 비범하고 기이한 삶들이 숨어있다. 페트로프의 아내 페트로바는 낮에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밤에는 광적인 수퍼히어로 자경단원으로 활동하며 여성을 학대하는 남자들을 골라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영화는 결론부에서 느닷없이 여배우가 등장하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추가한다. 꿈 이야기처럼 보이는 그의 다층적 서사에는 그야말로 연대가 없다. 초현실주의적으로 전환되는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혼란스러운 정치적 풍자와 아이러니가 가득한 블랙 코미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세레브렌니코프는 러시아 정부를 맹렬히 비판해왔다. 그러니 푸틴 정부가 그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는 세상의 모든 끔찍한 일들은 정치에 의해 시작되지만 예술이 그걸 멈출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가 러시아인들의 삶에서 소중한 가치를 발견해 내어 영화를 만드는 이유이다. 세레브렌니코프에게 있어 러시아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회 전체가 심하게 기침을 하고 있는 국가이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렇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