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을 함께 지내온 게이 커플 토마스와 마틴 사이에 여성이 끼어들면서 이들의 ‘결혼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절망과 낭만이 혼재하는 삼각관계 로맨스. [Mubi]
‘프랑스 영화 같다’는 표현에는 당황할 정도로 솔직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선댄스영화제 출신의 미국 감독 아이라 잭스(Ira Sachs)가 연출한 ‘패시지스’는 프랑스적인 감성이 차고 넘친다.
절망적으로 낭만적인 로맨스, 파괴적인 삼각관계를 다루는 ‘패시지스’는 실제로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스다. 잭스 감독은 그의 전작들인 ‘Love is Strange’(2014)와 ‘리틀맨’(2016)에서의 배경지 뉴욕에서 ‘패시지스’에 이르러 프랑스 파리로 이동한다. 그의 섬세한 연출 스타일에 한껏 세련미가 더해져 파리의 낭만과 우아함이 잘 어우러져 있다.
파리의 오늘을 살아가는 두 명의 남자와 여성. 파리는 더 이상 프랑스 사람들만의 도시가 아니다. 독일계 영화감독 토마스(프란츠 로고우스키, 트랜싯)와 영국인 예술가 마틴(벤 위쇼, 본드 시리즈)는 게이 커플이다. 토마스는 작업장에서나 관계에서나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도발적 태도와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마구 휘두르는 ‘통제자’다. 이런 결점에도 15년 동안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토마스를 잘 이해해주는 마틴의 배려심 때문이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아가테(아델 엑사르코폴로스)와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온 토마스. 이에 마틴은 발언권이 없다. 게이임을 알면서도 토마스를 유혹하는, 그러나 점차 그의 영역 안에서 조종되는 아가테. 토마스는 두 연인의 감정을 거칠게 다루면서 둘 사이를 오간다. 마틴에게도 새 애인 아마드가 나타나면서 커플의 결혼 생활이 위기를 맞는다.
잭스 감독은 관계에 대한 일반의 예상과 기대를 붕괴시킨다. 통제자의 위치에 있던 토마스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하고 그가 수시로 던지는 굴욕을 견뎌온 마틴의 편에 선다. 진실에 다가설수록 맞닥뜨리게 되는 고통이 세 주인공을 우울하게 한다.
자신을 아낌없이 던질 수 없는 토마스, 곤경에 처할 때마다 사랑을 말하지만 그의 사랑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사랑과 정욕이 엉킨 복잡한 삼각관계의 갈등을 순간적으로 봉합시키는 건 그나마 섹스다.
2013년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Blue is the warmest color)로 세계적 스타로 떠오르며 이례적으로 감독에게만 수여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델 엑사르코폴로스, 본드 시리즈의 Q로 얼굴이 익숙한 벤 위쇼, 오늘날 유럽 최고의 연기파 배우 프란츠 로고우스키는 각기의 캐릭터에 깃든 깊은 불안을 맹렬하고도 노골적으로 표현해낸다.
성 정체성의 혼미함에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는 설정들, 숨 막히도록 매력적인, 아프도록 솔직한 그래서 더욱 프랑스 영화 같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