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41)머스크, 미국인인가 남아공의 아들인가…속내는
[아프리카는] (41)머스크, 미국인인가 남아공의 아들인가…속내는(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초기 '실세'로 꼽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고 자랐다.
1971년 6월 28일 남아공의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 엔지니어이자 자산가인 아버지 에롤과 패션모델인 어머니 메이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이자 전기 작가인 애슐리 반스가 쓴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2015) 등에 따르면 머스크는 1988년 17세의 나이로 캐나다로 이주하기 전까지 유년 시절을 남아공에서 보냈다.
내성적이고 책을 좋아하던 그는 특히 과학과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 또래들보다 성숙하고 지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이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프리토리아의 워터클루프 하우스 초등학교(Waterkloof House Preparatory School)에서 시작된 괴롭힘으로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브라이언스톤 하이스쿨(Bryanston High School·한국의 중학교 과정 포함)로 진학했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프리토리아의 명문 고등학교인 프리토리아 보이스 하이스쿨(Pretoria Boys High School)로 전학한 그는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업 성적은 뛰어났지만 여기서도 계속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심지어 계단에서 밀려 굴러떨어져 심하게 다치는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가 남았다.
그러나 이런 트라우마는 동시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강인한 정신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그는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독서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특히 공상과학 소설과 철학 서적을 탐독해 상상력을 키웠다. 12세에는 '블래스터'라는 컴퓨터 비디오 게임을 직접 개발해 판매하기도 했다.
반스는 그의 학창 시절을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배우며 미래를 준비한 시간"으로 묘사했다. 아울러 오늘날 그의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의 기틀이 된 시기로 평가했다.
실제 머스크는 여러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의 도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었다"며 남아공 경험이 자신의 성장을 도왔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머스크는 나중에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런데도 남아공은 물론 캐나다와 미국 국적까지 보유한 그는 유년기에 겪은 부친과 불화와, 이런 성장배경 때문인지 남아공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다.
특히 남아공의 흑인경제육성법(BEE)이나 토지 수용 정책, 급진 좌파 정당의 흑인 대표 등에 대해 잇달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응을 끌어내 취임 이후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데 일조했다.
다양한 매체에서 접한 그의 발언을 보면 머스크는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는 남아공 현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요하네스버그의 한 40대 초등학교 교사는 "세계 제일의 부자인 머스크가 성취한 것은 모두 미국에서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아공 국민 대부분은 그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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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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