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이라니, 악에 맞서 싸웠지"…우크라 스파이 된 러시아 부부
러시아군 위치·구성 등 정보 제공해 우크라군 작전에 활용 폐가 지하실에 감금됐다 극적 석방…망명 결심하고 '가짜여권'까지 동원
러시아군 위치·구성 등 정보 제공해 우크라군 작전에 활용
폐가 지하실에 감금됐다 극적 석방…망명 결심하고 '가짜여권'까지 동원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우크라이나에 살면서 러시아의 침공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우크라이나군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던 러시아인 부부가 우여곡절 끝에 리투아니아에서 망명을 신청한 사연이 외신에 소개됐다.
26일(현지시간) 영국 BBC가 보도한 사연의 주인공은 남편 세르게이 보론코프(55)와 아내 타티야나 보론코프(52)다.
부부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는 모습에 질려 남편의 고향 러시아를 떠나 아내의 고향인 우크라이나로 가기로 결심했다.
자포리자주의 작은 마을에 정착한 소박한 삶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송두리째 흔들렸다.
아내 타티야나는 침공 첫날 러시아군이 발사한 미사일이 지붕 위를 날아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뒤이어 러시아군과 장비 행렬이 동네를 지나기 시작했다. 전쟁 초기 러시아군은 길이가 수십㎞까지 늘어진 느린 진군과 졸전으로 악명높았다.
타티야나는 이런 정보를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하기로 마음먹고, 수도 키이우에 사는 지인을 통해 정보당국과 접촉할 수 있는 텔레그램 채널을 소개받았다.
실제 당국과 접촉한 타티야나는 우크라이나 측의 요구에 따라 자신이 파악한 러시아군의 위치, 장비 구성 등 중요 정보를 넘겼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정보에 따라 드론·포 공격으로 러시아군에 작지 않은 피해를 줬다고 타티야나는 말했다.
이 일 이후 부부는 더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군에 정보를 제공했다. 측량사 출신인 남편이 러시아군 관련 좌표를 모아 오면, 타티야나가 텔레그램을 통해 정보를 전송하고 그 흔적을 지웠다. 남편 세르게이는 과거 소련군에 복무했을 때도 측량이 주특기였다고 한다.
2년간 계속되던 부부의 '협조'는 2024년 갑자기 중단됐다. 남편 세르게이가 갑자기 사라지면서다.
세르게이는 쇼핑 중 러시아군 무장요원에게 붙잡혀 한 폐가 지하실에 구금됐다. 이곳에서 37일 동안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의 집요한 추궁을 받았다. 잠은 쪼그려 앉은 자세로 잤다. 세르게이는 결국 폭력의 위협 앞에 자신의 행동을 자백해야 했다.
놀라운 사실은 자백 이틀 뒤 세르게이가 여권을 비롯한 신분증만 빼앗긴 채 풀려났다는 점이다.
부부는 지금까지도 풀려난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BBC는 러시아 점령지에서 아무런 근거나 절차 없이 인신이 구속되거나 석방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전했다.
늘어난 감시로 신변에 위협을 느낀 부부는 망명을 결심했다. 문제는 여권이었다. 새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러시아에 입국해야 했다.
부부는 일단 자동차를 타고 입국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러시아군이 혹시 검문하면 바다로 바람 쐬러 간다고 둘러댈 참이었다. 핑계가 그럴듯해 보이도록 고무 튜브와 밀짚모자도 준비했다.
다행히 러시아 입국에는 성공했지만 여권 발급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마음이 급한 세르게이는 텔레그램에서 산 가짜 여권으로 출국을 시도했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는지 러시아-벨라루스 국경을 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벨라루스-리투아니아 국경에서는 가짜 여권이 들통나고 말았다. 세르게이는 가짜 여권 사용 혐의로 리투아니아에서 유죄 선고까지 받았다.
어쨌든 러시아 점령지에 이어 러시아 탈출까지 성공한 부부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자, 우크라이나의 가까운 동맹국인 리투아니아에 난민을 신청하고 쉼터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이 이 부부의 행동에 대한 '감사 서한'을 보내 부부의 난민 신청을 지지했다고 BBC는 전했다.
타티야나는 러시아인으로서 우크라이나군에 협력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BBC에 "반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러시아를 공격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악에 맞서 싸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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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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