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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의 쇼미더컬처] ‘처음’이 있어야 ‘해피엔딩’도 있다

중앙일보

2025.06.05 08:12 2025.06.0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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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 문화선임기자
‘처음’이란 게 이렇게 설레고 두렵고 어려운 일이라니. 지난달 2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서울시뮤지컬단의 신작 ‘더 퍼스트 그레잇 쇼’(6월 15일까지)를 보며 새삼 곱씹었다. 뮤지컬이란 개념조차 낯설었던 1960년대, 국가의 명령으로 ‘최초이자 최고의 쇼’ 만들기에 도전했던 선구자들 얘기다. 주인공은 중앙정보부 문화예술혁명분과 유덕한 실장(박성훈·이창용)과 얼치기 연출가 김영웅(이승재·조형균). 북한의 ‘피바다 가극단’에 맞설 공연 제작을 명받고 전국에서 트로트가수·성악가·무당 등 출연진을 끌어모으지만, 낯선 장르의 벽은 높고 정부의 검열·간섭은 점입가경이다.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바뀌는 것이 창작의 묘미”라는 대사가 부조리 속 애환을 응축한다.

1960년대 창작 뮤지컬의 도전과 분투를 코믹하게 풀어가는 서울시뮤지컬단의 신작 ‘더 퍼스트 그레잇 쇼’. [사진 세종문화회관]
모티브가 된 건 서울시뮤지컬단의 전신이자 국내 첫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1966)를 제작한 예그린악단이다. 예그린악단은 5·15 군사쿠데타 직후 문화재건 계획에 따라 중앙정보부 초대부장 김종필이 발족을 주도하고 후원회장까지 맡았다.

그렇다고 실제 역사를 그대로 무대화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도전과 분투를 “자칫 희화화한 것처럼 오해될까 봐 걱정”(김덕희 단장)하며 “뮤지컬을 사랑했던 선배님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연출 김동연)를 담았다는 게 제작진의 변이다.

관람 후기엔 르네상스 시절 뮤지컬 장르를 최초로 시도한 이들의 이야기인 ‘썸씽 로튼’이나 한국 최초의 오페라 가수 성장기인 ‘일 테노레’가 연상된다는 평이 보인다. 둘 다 장르 개척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소재다. 창작과 검열에 관한 메타 서사란 측면에선 1970년대 충무로 배경의 영화 ‘거미집’(2023)도 떠오른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던 시절, 배가 산으로 가는 상황에서 ‘더 퍼스트 그레잇 쇼’ 속 극 중 인물들은 “무조건 해피엔딩”을 외친다. 하기야 모든 예술(대중문화 포함)의 속성이 꿈과 환상인데, 그런 낙관도 없이 누가 첫발을 뗄 수 있겠나.

공교롭게도 오는 8일(현지시간)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작품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수상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 11월부터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에서 ‘살짜기 옵서예’의 DNA를 찾는 건 무리수처럼 보인다. 그렇다 해도 “오늘날 우리 창작 뮤지컬의 위상이 있기까지 1960~70년대 불모지에서 시도했던 선배들이 있었다”(서울시뮤지컬단 드라마터그 박슬기)는 헌사가 아깝진 않다. 60년 전 좌충우돌을 웃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이 같은 성장 덕분이다. 정치·사회 곳곳에서 새 출발이 많은 시기, 부디 곳곳의 초심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지길. 아 참, ‘더 퍼스트 그레잇 쇼’는 초연이라서 후한 마음으로 감상했지만, 더 잘 다듬어야 사랑받고 롱런할 것 같다. 처음이라 양해되는 건 그때뿐이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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