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안치홍(35)은 지난 17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데뷔 17시즌 만에 처음으로 안경을 쓰고 타석에 섰다. 시력이 점점 떨어지자 ‘공을 더 잘 봐야겠다’는 생각에 안경을 맞췄는데, 최상의 결과가 나왔다. 0-0으로 맞선 3회 2사 1·3루에서 결승 3점포를 터트렸다. 그의 시즌 1호 홈런이다. 시즌 내내 이어진 타격 슬럼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한 방이라 더욱 값졌다. 경기 후 안경에 큰 관심이 쏟아지자 그는 “타석에서 점점 더 공이 안 보이는 느낌이라 어렵게 결심했다. 수비할 때 불편할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털어놨다.
야구선수에게 눈은 생명과 같다. 그러나 경기 중 안경을 쓰는 건 생각보다 불편하다. 수비나 주루 때 움직임이 많은 야수는 더욱 그렇다. 땀이 흐르면 안경이 얼굴에서 흘러내리고, 공에 맞기라도 하면 큰 부상이 따를 수 있다. 시력 낮은 선수들이 대개 안경보다 콘택트렌즈나 시력교정 수술을 선택하는 이유다.
안경을 써야만 하는 선수도 있다. 과거 한 유명 타자는 시력 교정술을 받은 뒤 야간 경기 때 빛 번짐 현상으로 고생했고, 결국 기량 저하로 이어졌다. 코치들도 “투수는 시력 교정을 권할 만하지만, 타자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만류한다. 콘택트렌즈도 사람마다 다르다. 안치홍은 “20대 중반에 콘택트렌즈를 사용해봤는데, 경기 중에 눈에서 자꾸 빠져 포기했다”고 말했다.
LG 트윈스 레전드 타자 박용택 해설위원은 라식 수술을 받고도 안경을 썼다. 시력이 다시 떨어지고 공이 여러 겹으로 보이는 난시 증상이 생기자 안경을 꺼냈다. 덜 불편한 안경테와 렌즈를 찾느라 수십 개의 안경을 구매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 결과 30대에도 더 좋은 타격을 보였다. KIA 타이거즈 에이스 양현종도 2013년 라식 수술을 받아 일반인보다 시력이 좋다. 그런데도 마운드 위에서는 물론 일상에서도 계속 도수 없는 안경을 쓴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써온 안경이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져 “없으면 더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설명했다.
투수들은 주로 “포수 미트를 더 또렷하게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 안경을 쓴다. 가장 유명한 ‘안경 쓴 투수’라면 단연 ‘무쇠 팔’ 고 최동원이다. 그는 투구 전 송진 가루, 신발 끈, 양말, 모자챙을 차례로 만진 뒤 금테 안경을 고쳐 쓰고 공을 던지는 루틴으로 유명했다. 최동원이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올리며 우승을 이끌던 1984년 당시 부산 지역 남성들 사이에 금테 안경이 유행했다고 한다.
반면 SSG 랜더스 투수 김광현은 2013년 두 차례 안경을 쓰고 마운드에 올랐다가 금세 벗어버렸다. 난시 때문에 몇 차례 포수 사인을 잘못 읽은 뒤 고육지책으로 썼는데, 안 쓰던 안경이 걸리적거려 오히려 불편했다. 결국 두 경기 만에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