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사무엘서 12장은 이스라엘 왕 다윗에게 예언자 나단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단은 욕심 많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직언한다. 다윗왕이 부하 장수의 부인을 빼앗고, 이를 감추기 위해 장수를 최전선에 내보내 죽게 한 것을 비유한 것이었다. 다윗은 즉시 신이 진노했음을 깨닫고 회개했다.
성 안의 신하들은 왕의 횡포를 알면서도 침묵했다. 군대는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명령을 따랐다. 나단은 최고 권력자였던 다윗에게 책망의 말을 꺼낼 용기를 어떻게 냈을까. 아무리 신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로서 사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목숨을 거는 각오가 필요했을 것이다.
성경 속 일화가 떠오른 건 최근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의혹 수사 일지를 보면서였다. 2010~2011년에 발생했다는 주가조작 의혹은, 2019년 7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윤 전 대통령 취임 뒤인 2023년, 경찰은 김 여사에게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대통령 경호처 부속청사에서 김 여사를 비공개 조사했고, 약 3개월 뒤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수사가 다시 시작된 건, 윤 전 대통령 파면 뒤인 지난 4월이다. 서울고검은 재기 수사를 결정했다. 최근 이른바 ‘김 여사 특검’이 출범한 가운데, 검찰이 압수수색에서 김 여사와 증권사 직원 간 통화 녹음 파일을 대량 확보한 사실이 드러났다.
논란이 불거진 지 약 6년 동안, 김 여사를 향한 수사는 진전이 없었고 사건의 ‘스모킹 건’으로 평가되는 녹음이 뒤늦게 공개됐다. 이 시간 동안 국민은 수사 기관이 수사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했다. 사건 관련자들이 수사를 받고 1·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에야 김 여사 수사가 본격화한 건, 수사 기관이 검찰총장과 대통령이라는 권력 앞에서 모른 척 침묵했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 이른바 ‘내란 특검’을 맡은 조은석 특별검사가 “사초를 쓰는 자세로 직을 수행하겠다”고 말한 게 화제였다. 사초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조선시대 사관(史官)이 실록을 편찬하기 위해 쓰는 초고로, 왕도 열람하거나 수정할 수 없었다. 거대 권력이나 정치 논리와 상관없이 진실 되게 남는 기록이다. 출범한 특검들이 한 치의 의혹도 없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길 기대하고 응원하면서도, 왜 그동안은 그런 기대를 하지 못했는지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