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중앙일보

광고닫기

[노트북을 열며] 나단과 사초

중앙일보

2025.06.18 08:1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김선미 사회부 기자
구약 성경 사무엘서 12장은 이스라엘 왕 다윗에게 예언자 나단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단은 욕심 많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직언한다. 다윗왕이 부하 장수의 부인을 빼앗고, 이를 감추기 위해 장수를 최전선에 내보내 죽게 한 것을 비유한 것이었다. 다윗은 즉시 신이 진노했음을 깨닫고 회개했다.

성 안의 신하들은 왕의 횡포를 알면서도 침묵했다. 군대는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명령을 따랐다. 나단은 최고 권력자였던 다윗에게 책망의 말을 꺼낼 용기를 어떻게 냈을까. 아무리 신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로서 사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목숨을 거는 각오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난해 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사진 대통령실]
성경 속 일화가 떠오른 건 최근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의혹 수사 일지를 보면서였다. 2010~2011년에 발생했다는 주가조작 의혹은, 2019년 7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윤 전 대통령 취임 뒤인 2023년, 경찰은 김 여사에게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대통령 경호처 부속청사에서 김 여사를 비공개 조사했고, 약 3개월 뒤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수사가 다시 시작된 건, 윤 전 대통령 파면 뒤인 지난 4월이다. 서울고검은 재기 수사를 결정했다. 최근 이른바 ‘김 여사 특검’이 출범한 가운데, 검찰이 압수수색에서 김 여사와 증권사 직원 간 통화 녹음 파일을 대량 확보한 사실이 드러났다.

논란이 불거진 지 약 6년 동안, 김 여사를 향한 수사는 진전이 없었고 사건의 ‘스모킹 건’으로 평가되는 녹음이 뒤늦게 공개됐다. 이 시간 동안 국민은 수사 기관이 수사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했다. 사건 관련자들이 수사를 받고 1·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에야 김 여사 수사가 본격화한 건, 수사 기관이 검찰총장과 대통령이라는 권력 앞에서 모른 척 침묵했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 이른바 ‘내란 특검’을 맡은 조은석 특별검사가 “사초를 쓰는 자세로 직을 수행하겠다”고 말한 게 화제였다. 사초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조선시대 사관(史官)이 실록을 편찬하기 위해 쓰는 초고로, 왕도 열람하거나 수정할 수 없었다. 거대 권력이나 정치 논리와 상관없이 진실 되게 남는 기록이다. 출범한 특검들이 한 치의 의혹도 없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길 기대하고 응원하면서도, 왜 그동안은 그런 기대를 하지 못했는지 씁쓸해진다.





김선미([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