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주파도 동맹파도 아닌 실익을 따라왔다”고 말했다. “자주파라는 평가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이었다. 노무현 정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 후보자는 대북 관계를 풀어가는 데 있어 한미동맹보다 남북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자주파’로 평가돼 왔다. 이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들 중 가장 먼저 국회 검증대에 올랐다. 청문회는 초반에는 공개됐지만 이내 비공개로 전환됐다.
청문회가 끝난 뒤 정보위 국민의힘 간사인 이성권 의원은 “당내 의견을 수렴한 뒤 인사청문회 보고서는 내일(20일) 오전 10시에 채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청문위원은 중앙일보 통화에서 “(비공개) 청문회 분위기가 무난했고, 통과에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모두발언에서 “평화는 강력한 국방력과 그에 바탕을 둔 대화와 협상의 2개의 바퀴가 선순환하며 증진된다”며 “우방국 정보기관과 긴밀히 공조해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군사 도발 대비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은 이 후보자의 대북(對北)관부터 파고들었다. 권 의원이 “자주파라고 불릴 만한 행동이나 주장을 한 것은 없느냐”고 재차 묻자 “20년 전에도 보수에서는 자주파라고, 진보에서는 동맹파라고 비난했다. 국익에 따라 대통령을 모시고 일하면 양쪽을 다 가게 된다”고 답했다. “북ㆍ중ㆍ러 밀착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자주적으로 혼자 북한을 상대하는 게 옳냐”는 질문에는 “오늘날 세계는 협력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한미 동맹이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바탕”이라고도 했다. 같은 당 유영하 의원은 “김정은이 우리 보편적인 상식으로 볼 때 독재자로 볼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 후보자는 “독재자”라고 답했다.
대미ㆍ대일 입장에 대한 질의도 많았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2019년 ‘지소미아는 처음부터 잘못 맺은 것이다. 파기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이 후보자는 “사실”이라면서도 “이미 한일 간 합의가 됐고, 합의된 데 대해서는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답했다.
이 과정에서 송 의원이 “굉장히 친북적이라 이런 분이 국정원 이끄는 수장이 됐을 때 북한의 대남 연락 사무소 기관으로 전락할지 (국민이) 걱정한다”고 말하자 고성이 일기도 했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이 “한 나라의 국정원장 후보자를 그런 식으로 지칭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야당 쪽에서 “왜 반말을 하느냐”고 소리치자 김 의원은 “반말 안 했다”고 받아쳤다.
국민의힘 소속 이성권 의원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뜻의) 안미경중론’을 언급하며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경제도 안보도 손상이 오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 후보자는 “미국과 관계가 틀어지지 않도록 하면서도, 우리는 통상 국가이기 때문에 이 풀 저 풀 다 뜯어먹고 살아야지, 한쪽 풀만 뜯어먹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풀 저 풀” 대목에서는 야당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이 “(2021년) ‘북핵을 포기시키려면 한미 훈련 중단 같은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추궁하자 이 후보자는 “북핵 포기를 위해서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고, 북한이 포기 안 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조건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여당은 적극 방어에 나섰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남북문제와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 전문적 식견과 능력을 갖춘 후보자에게 친북, 종북이라는 단어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반박했고, 같은 당 박선원 의원도 “교착된 남북대화를 돌파해내기 위해서 과거 노태우 정권 때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했던 것처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하면 왜 이렇게 날을 세우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에)이번 주에 예정되는 나토 정상회의 참여를 건의해 달라”고 했고, 이 후보자는 “알겠다”며 “대통령 참석을 전제로 원이 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당은 국정원의 12ㆍ3 비상계엄 개입 여부의 조사를 촉구했다. 이기헌 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홍장원 1차장한테 전화해 적극 협조하라고 하고 조태용 원장이 묵인했다는 의혹에 대해 국정원이 단호한 조사를 하겠느냐”고 묻자 이 후보자는 “내란 특검에서 여러 가지 조사를 하겠지만 국정원에서는 필요한 정도로 살펴보는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자의 신상 및 도덕성 관련 질의는 이 후보자가 최근 5년 스쿨존 과속 등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16번 과태료를 낸 것을 추궁하는 선에 그쳤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차량 몰면서 딱지 몇 번 뗐는지 기억하느냐”고 묻자 이 후보자는 “한번 한번 횟수를 (세지는 못했다)…”이라며 “이번에 알았다”고 했다. “실수였다”는 이 후보자 설명에 송 의원은 “실수가 계속되면 법령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