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맥주 ‘곰표 밀맥주’의 흥행을 함께 일궜던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의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격화하고 있다. ‘곰표’ 상표권을 가진 대한제분이 수제맥주 제조사 세븐브로이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하면서다. 경영 악화로 기업회생절차 중인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이 곰표 밀맥주의 레시피를 탈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1세대 수제맥주 제조사의 전략 실패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체 상품 개발 없이 브랜드 콜라보레이션(협업)에 의존해 상장하고, 설비 투자를 과도하게 했던 것이 독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대한제분은 지난 18일 “세븐브로이가 입었다는 손해가 대한제분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청구했다”며 “허위사실로 대한제분의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한 데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020년 5월 출시된 곰표 밀맥주는 대한제분과 편의점 CU가 내놓은 ‘곰표 팝콘’의 후속작이었다.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를 활용해 제품을 선보였고, 출시 3일 만에 초도물량 10만개가 완판되는 등 큰 인기를 거뒀다. 세븐브로이의 생산 설비로는 물량을 대기 어려워지자 2021년부터는 롯데칠성음료가 위탁생산을 맡았고, 3년간 약 6000만 개가 판매됐다.
갈등은 2021년 세븐브로이가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며 불거졌다. 대한제분은 곰표 브랜드를 앞세운 상장이라고 우려했다. 이후 상표 사용 계약이 종료되던 2023년 3월 대한제분은 한울앤제주(옛 제주맥주)와 곰표 밀맥주 시즌2 제조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한 달 뒤 세븐브로이는 기존 내용물에 제품명과 포장만 바꾼 ‘대표 밀맥주’를 출시했다. 세븐브로이는 “6개월간 개발한 곰표 밀맥주를 타사에서 두 달 만에 새로 내놨다”며 레시피 탈취와 설비·개발비 투자 등으로 약 68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제분은 세븐브로이가 정당한 계약 종료를 ‘갑질’로 왜곡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곰표 브랜드와 디자인 등은 대한제분의 지식재산권(IP)이며, 곰표 밀맥주 시즌2는 원재료와 맛, 향 등이 전혀 다르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대한제분은 세븐브로이가 경영 악화 원인을 떠넘긴다고 주장했다. 대한제분 측은 “세븐브로이가 곰표 밀맥주로 3년간 800억원 대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기간 대한제분은 매출의 1.5%인 약 12억원을 로열티로 받은 게 전부”라며 “세븐브로이가 2022년 국내 최대 규모 공장을 증설하는 등 무리한 경영으로 위기를 자초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의 갈등은 수제맥주 시장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2021년 업체가 우후죽순 늘었지만 2023년부터 수제맥주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이들이 흑자를 낸 기간은 손에 꼽을 정도다. 코로나 엔데믹을 기점으로 수입맥주와 위스키, 하이볼 수요가 늘며 수제맥주 열풍이 사그라든 영향이다.
세븐브로이의 2023년 매출은 전년 대비 70% 급감한 123억원, 영업손실 62억원을 기록했고 300억원을 들여 만든 익산 공장의 가동률은 12%에 그쳤다. 세븐브로이는 결국 지난 12일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업계 1위인 한울앤제주의 경우 2021년 ‘테슬라 요건(이익 미실현 기업 특례)’으로 코스닥에 상장했지만, 이후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주류업계는 수제맥주 제조사들이 외형 확장에 치중한 게 부메랑이 됐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자체 신제품 개발과 브랜딩, 품질 개선을 놓친 채 과도한 설비 투자와 외형 확장에 집중한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