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 분량의 장편 소설을 음악 작품에 담아낼 수 있을까. 곧이곧대로 작곡하면 수십 시간이 걸릴 터. 그래서 문학적 주제를 교향시로 작곡할 때에는 흔히 작품의 핵심 인상을 포착하는 전략이 동원된다. 예를 들어 리스트는 1만1121행에 이르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세 명의 주요 인물(파우스트·메피스토펠레스·그레트헨)의 ‘성격 묘사’로 압축했다.
니콜라이 고골의 동명 소설을 소재로 한 야나체크(사진)의 ‘타라스 불바’도 문학을 음악화한 탁월한 사례다. 들사람의 기개를 간직한 카자크 용병 대장과 두 아들의 비극을 그리는 원작에는 거나한 술판, 열렬한 신앙심, 폴란드인에 대한 적개심과 전쟁 등이 세세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야나체크는 그런 세부를 버리고 이야기를 딱 세 곡으로 압축한다. ‘안드리의 죽음’ ‘오스타프의 죽음’ ‘타라스 불바의 죽음’. 이 세 번의 죽음이 핵심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작은아들 안드리는 순수하고 청년다운 사랑 때문에 죽는다. 전쟁도, 엄한 군법도 적국인 폴란드 여인을 향한 그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배신자가 된 막내를 죽이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바이올린·잉글리시호른 등의 솔로로 연주되는 애틋한 선율은 급히 다가오는 타악과 금관의 전쟁의 소리에 가로막히지만 그럼에도 숭고하고 따뜻하다.
한편 큰아들 오스타프는 용맹하게 싸우다 죽는다. 아버지는 슬프게 감격한다. 그러나 막상 야나체크가 포착해내는 것은 화형대에서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는 고통의 외침이다. 절규하는 클라리넷 소리는 고통스러운 만큼 인간답다.
타라스 불바의 죽음은 숭고한 계시다. 죽음 안에 남아 있는 뜨거운 사랑 때문이다. 장엄한 오르간과 금관악기에 안드리의 주제를 품에 안은 듯한 서정적인 주제가 한데 얽힌다. 들어보라! 앞서간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이 무뚝뚝한 아버지의 가슴 속에 그토록 펄펄 살아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