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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소통·협력의 국민통합과 기술강국 실현이 살길

중앙일보

2025.06.19 08:30 2025.06.1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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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이재명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의 앞날에 대한 해외 관심도 높다. ‘국민의 정부’에서 일한 필자로선 김대중 대통령과 연관시킨 논평이 특히 눈에 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한국의 새 대통령:프라이팬에서 불 속으로(Frying Pan to Fire)’라는 글에서 “1997년 유동성 위기 때의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한국 대통령 중 가장 힘든 도전에 직면했다”, “한·미 동맹이 전략적 유연성 논의와 주한미군 일부 철수 검토 등 ‘조용한 위기’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 “진보적 성향과 사회복지 정책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 방향과 비슷하고, 국내외 도전을 뚫고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도 비슷하다”(AP통신), “한·미 동맹을 중시하면서 중국과의 균형적 관계를 추구하는 실용주의 외교 노선이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 다변화 정책과 비슷하다”(가디언지)는 요지의 논평도 있었다.

해외서 “DJ 이후 최대 도전 직면”
이 대통령, 성장·경제·통합 강조
경청과 소통의 자세로 실천 기대
과학기술 중시 복합위기 타개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은 6월 4일 취임선서식 연설문 작성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를 참고했다고 한다. 성장과 경제를 특히 강조하고, ‘정의로운 통합’ 등 국민통합을 다섯 차례 강조했다.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쓸 것”이라며 ‘실용적 시장주의’를 역설했다. 이제 온 국민의 시선이 그 선언의 실행에 쏠려 있다. 표를 주지 않은 50.58%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고, 내란 종식의 3대 특검이 정치보복이 아니며, 입법권력 장악이 독선적 국정운영이 아님을 보여야 한다. 어느 하나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1865년 3월 4일 링컨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 연설은 화합의 진수를 보여준다. 70만 명을 희생시킨 남북전쟁으로 분열된 국민 앞에 서서, 링컨은 단지 703개 단어의 짤막한 연설로 모두를 숙연케 했다. 북부를 향해 승리를 축하하지도 않았고, 남부를 향해 노예제의 죄악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분열의 언어 대신, 국가 전체가 그 죄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며 화해와 통합을 간곡히 호소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인사에서부터 화합을 실천했다. 김종필 총리와의 진보-보수 연합으로 내각의 절반을 양보했고, 비서실장에 노태우 정부 정무수석이었던 김중권(경북 울진) 전 민정당 소속 3선 국회의원을, 초대 국가안전기획부 부장에 민정당·민자당 소속 4선 국회의원 출신 이종찬 전 노태우 정부 정무장관을, 초대 주미대사에 신한국당 대표를 지낸 이홍구 전 김영삼 정부 국무총리를 임명했다.

정치인 김대중은 40여 년 동안 망명과 가택연금,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겪고 6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 억압과 고통의 세월을 뒤로하고, 대통령의 권좌에서 정적을 용서하고 화해하며 국민통합에 진력한 것이다. 전직 대통령 초청 만찬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재임 때 전직 대통령들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런 정치적 끈이 없던 나 같은 사람도 환경부를 맡겨 대통령 퇴임과 함께 물러난 최장수 장관으로 만들었다. 연고를 따진다면, 김영삼 정부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으로 ‘국가경영의 과학화 기반 구축방안’ 보고서를 작성해 당선인 시절에 발표하고, 자문위원 연임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과학기술혁신사업 추진방안’(1998년)을 직접 보고한 적이 있는 정도였다. 그때 과학기술혁신 역량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경제위기의 돌파구로 보고, 원스톱 서비스의 ‘119 기술지원단’ 운영 등 4대 혁신과제와 국가과학기술혁신추진본부 설치를 건의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 2월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명자 환경부장관으로부터 2002년도 환경도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대중 정부는 민주주의·민주적 시장경제·생산적 복지를 3대 국정지표로 해 기업·금융·공공·노사 등 4대 개혁을 추진했고, 정보화·생산적 복지를 비롯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학기술정책을 짰다. R&D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대통령) 신설, 5개년 단위 과학기술기본법 최초 제정, 과학기술처의 과학기술부 승격(1998년 2월)과 과학기술혁신본부 설립, R&D 예산 대폭 증액(1998년 12조원에서 2002년 16조원), 제1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 추진, IT·BT(바이오 기술)·NT(나노)·CT(문화)·ET(환경)·ST(우주) 등 6개 전략산업과 벤처산업에 대한 적극 지원을 실행했다.

오늘의 복합위기 상황은 IMF 위기보다 더 엄혹하다. 국가경쟁력(IMD 발표)은 작년 20위에서 27위로 떨어졌다. 분열과 갈등으로 소모할 시간이 없다. 비상(非常)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경청·소통·협력으로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학기술을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성장동력이라면서 AI·반도체·배터리·항공우주산업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인프라 재편, 국가 주도 전략을 강조했다. 서둘러 과학기술계 사기 진작과 기업가 정신 고양으로 재정 규모의 한계를 상쇄하고 R&D의 경제적·사회적 성과를 높여야 한다. 정교하고 유효한 실천전략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는 진짜 리더들을 발탁해 4차 산업혁명기 과학기술 강국의 기적을 일구는 것이 살길이다.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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