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보름이 넘었는데 내각 구성이 턱없이 지연되고 있다. 20일 현재 이 대통령이 지명한 각료 후보자는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한 명뿐이다. 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인수위 없이 출범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취임 195일 만에야 초대 내각을 완성해 역대 최장기 기록을 세우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이 대통령보다는 조각 착수가 빨랐다. 취임 이튿날 민정수석과 인사수석을 지명했고 취임 8일째에 공정거래위원장을 시작으로 각 부처 장관 후보 지명이 이어져 취임 한 달 만에 1차 지명을 거의 마무리했다.
이 대통령의 조각 지연 이유는 겉으론 국민으로부터 고위 공직자 후보를 추천받는 ‘국민추천제’ 탓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이 대통령의 각별한 신뢰 속에 정권 2인자로 부상한 김민석 총리 후보자가 국무위원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가 취임할 때까지 장관 인선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여권의 중론이다. 오는 24~25일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린 뒤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가결된 이후에야 내각 인선이 본격화할 공산이 크다는 거다. 그런데 김 후보자는 불투명한 자금 수수와 ‘아빠 찬스’ 등의 의혹으로 야당의 퇴진 압박에 직면한 상태다. 또 임명 나흘 만에 낙마한 오광수 전 민정수석의 후임 지명이 미뤄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 최측근인 김현지·김용채 대통령실 비서관 등 극소수 ‘성남 라인’이 인사 실무를 장악한 것도 조각 지연의 이유로 알려졌다. 철통 보안을 위해 소수가 추천·검증 작업을 하니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 대통령은 두 달간의 인수위 기간 없이 당선되자마자 정권을 맡은 만큼 역량이 검증된 장관과 참모진을 신속하게 적재적소에 기용해 국정을 가동시킬 책임이 크다. 더욱이 이재명 정부 앞에는 미국발 관세 전쟁과 성장률 0%대인 경제, 주한미군 감축과 중동 정세 불안 등 국가적 난제가 산적해 있다. 김 총리 후보자의 인사제청권을 보장하겠다는 이유만으로 조각을 미루기엔 상황이 너무나 긴박하다. 따라서 경제부총리와 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국방부 등 경제·안보 부처 장관 후보들만큼은 김 총리 후보자 취임에 구애받지 말고 신속히 적임자를 지명하는 것이 맞다. 문 전 대통령도 첫 총리 지명자인 이낙연 총리에 대해 야당이 병역 면제와 부인 그림 강매 의혹 등을 제기해 인준이 지연되는 곤경을 겪었지만, 박근혜 정부 인사인 유일호 당시 국무총리 직무대행 부총리에게 20일간 제청권을 행사토록 해 조각 지연을 최소화했다.
그게 어렵다면 이 대통령은 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차관들이라도 먼저 임명해 조속히 실무 내각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김 후보자 취임 이후로 미룬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장관급) 인선을 앞당겨야 한다. 취임 하루 만에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을 임명해 그가 주재하는 차관회의를 통해 새 정부 정책 집행 속도를 올렸던 문 전 대통령의 사례를 참고할만하다.
지금 공직사회는 171일의 국정 공백 동안 겪은 혼란으로 여전히 뒤숭숭하다. 윤석열 정부 출신 장관들이 새 정부 출범 이후 보름 넘게 자리를 지키면서,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눈치만 보고 있다는 세종시발 뉴스가 우려를 자아낸다. 이재명 정부는 여당 의석 120석으로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167석이란 압도적인 의석을 보유한 데다 어려운 민생과 불안한 국제정세를 고려해 속도감 있게 일해달라는 여론의 요청도 받고 있다.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재들을 속히 장관직에 발탁해 새 정부의 진용을 갖추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