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 그리고 110여명의 합창단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이끌던 정명훈 지휘자의 지휘봉이 툭 떨어진 순간, 1600여 관객이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는 ‘환희의 송가’ 가사처럼, 감동의 운율에 하나가 된 이들이 부산콘서트홀의 성공적 개막을 자축했다.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홀인 부산콘서트홀(부산 연지동)이 20일 정명훈 예술감독이 이끄는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 연주와 함께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에 대공연장 2011석과 소공연장 400석을 갖췄다. 이날 오후 7시30분 시작된 개관공연은 부산콘서트홀 조성에 기여한 각계 인사들과 추첨에서 뽑힌 시민 등을 초대해 진행됐다. 한·중·일 정상급 연주자들로 구성된 일종의 연합군인 APO(1997년 창단)는 수년간 활동과 휴지기를 반복하던 중 이번 개막을 맞아 다시 정 감독 지휘봉 아래 모였다.
정 감독은 이날 1부에선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로서 베토벤 삼중협주곡(트리플 콘체르토) C장조 Op.56을 선사했다. 첼로는 지안 왕, 바이올린은 사야카 쇼지가 맡아 세 악기 간에 숨바꼭질 하듯 매끄러운 화음이 돋보였다. 정 감독은 피아노를 치던 손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구석구석 지시하며 흥겨움 속 빈틈없는 밀도를 이끌었다.
2부의 베토벤 9번 교향곡 D단조 Op.125 ‘합창’은 ‘형제애’를 강조하는 메시지 때문에 베를린 필하모닉 개관 공연 등 역사적인 현장의 단골 레퍼터리였다. 부산 개관을 맞아 각 대륙의 수십개 기관에서 헤쳐모인 단원들은 곡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정상급 기량을 바탕으로 마치 상설 연주단원인 양 정돈된 음색을 뽑아냈다. 창원시립합창단과 2025시즌 클래식부산 합창단의 연합된 목소리도 발군의 솔로이스트(소프라노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방신제, 테너 김승직, 바리톤 김기훈)들과 함께 폭발할 듯한 감정의 고양을 선사했다.
앞서 몇 차례 시범 공연은 있었으나 이날 처음으로 ‘신고식’을 한 콘서트홀 음향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렸다. 전반적으로 소리가 명징하고 빈야드 설계에서 나오는 집중력이 무대를 한층 가까이 느끼게 했지만 클래식홀에 기대하는 잔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벽 마감재에 일반적인 목재가 아니라 벽돌을 지그재그 쌓는 방식으로 음향 환경을 조절한 것이 낯설다는 반응이다.
현장에서 만난 최진 톤마이스터(레코딩 프로듀서)는 “소리 잔향은 반사가 결정하는데 벽돌 구조가 목재에 비해 다소 잔향이 짧게 느껴질 것”이라면서 “공연장 오픈 초창기치곤 많이 안정화돼 있지만, 좀 더 면밀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용 콘서트홀을 기다려온 부산 관객들은 만족한다는 반응이 앞섰다. 부산에서 3년간 근무해온 두드니크 옥사나 주부산 러시아 총영사는 “매주 콘서트와 공연장을 찾을 정도로 음악을 즐기는데 완벽한 공연장이 부산에 생겨서 기쁘고 행복하다”면서 “인근의 국립국악원과 엮어서 즐겨 찾는 문화 명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날 객석에선 주최 측의 사전 고지에도 불구하고 공연 중에 영상이나 사진을 찍다가 적발되는 일이 더러 있었다. 곡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가 터져 나와 몰입을 떨어뜨린 점도 클래식 감상 문화의 아쉬운 측면을 드러냈다.
부산콘서트홀은 이날 공연을 시작으로 28일까지 개관 페스티벌을 이어간다. 22일에는 정명훈이 지휘하는 APO가 각각 피아니스트 조성진, 오르가니스트 조재혁과 함께 하는 공연이 열린다. 특히 조재혁이 연주할 생상스 교향곡 제3번 ‘오르간’을 통해 비수도권 최초로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이 실체를 과시할 전망이다. 합창석 쪽 벽을 채운 파이프오르간은 프라이부르거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파이프 수 4406개에 이른다.
이밖에도 지휘자가 아닌 피아니스트로서 정명훈을 만날 수 있는 슈베르트 피아노 오중주 ‘송어’(25일) 등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진다. 이번 페스티벌 공연은 지난 5월 예매 오픈과 함께 대부분 매진돼 현재 콘서트 오페라 ‘피델리오’(27~28일) 표만 일부 남아 있다.
부산콘서트홀을 운영하는 클래식부산의 박민정 대표는 “그간 부산이 영화(부산국제영화제)와 미술(아트부산)로 널리 알려졌지만 앞으로 클래식을 통해 문화도시로서 위상을 높이고 관광 허브로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