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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존엄'에 걸려온 두 통의 부재중 전화…김계관과 최선희 운명 갈랐다 [월간중앙]

중앙일보

2025.06.20 22:00 2025.06.2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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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공개 | 2019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내막 [한진명 평양랩소디]

김정은의 오판, 리수용의 계산, 김영철의 충성…하노이의 유령으로 남은 통일전선부
실패한 당(黨) 외교의 결말과 외무성의 화려한 귀환…3차 북·미 정상회담 의제는 ‘군축’

김정은은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의 돌연사로 최고 통수권자가 됐다. 북한 노동당의 순차적인 후계자 준비 작업 없이 오직 김정일의 추천과 고모부 장성택의 후원으로 이뤄진 결정이었다. 갑작스러웠던 만큼,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 마음속에 ‘김일성과 똑 닮은 이미지’ 외에는 내세울 게 없었다. 정치적 리더십과 국가적 헌신 없이 최고 통수권자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에 김정은은 선대와는 차별화된 정치·외교적 성과물 획득을 통해 주민들의 신뢰를 얻으려 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노정(과정)에 집착한 이유다.

김정은을 따라다닌 프레임은 ‘30대의 성숙되지 못한 지도자’였다. 이에 김정은은 야심 차게 국제무대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준비한 공정이 바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다. 필자는 이번 글을 통해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전후에 발생한 북한 내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북한 외무성과 노동당 국제부, 통일전선부(통전부) 간의 숨 막히는 견제와 긴박한 협상 과정에 대한 글이다.

지난 2019년 6월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연합뉴스
고아에서 혁명 1세대의 수양딸로…김정은의 외교관
북한 외무상으로 잘 알려진 최선희의 경로는 이색적이다. 최선희의 삶의 발자취를 보면 트럼프 2기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내놓을 의제와 성공 여부를 전망해 볼 수 있다.

현재 북한은 정상국가로의 진입을 꾀하고 있다. 김정은이 생각하는 정상국가란, 핵 개발에 기초한 대미정책에 집중하면서도 국제 제재를 벗어나는 것이다. 미국과의 외교 정상화, 즉 북·미 수교가 김정은이 그리는 궁극적인 정상국가의 모습이다. 북한이 대미정책에 치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제사회에서 추락한 북한 이미지를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이용해 쇄신하기 위함이다. 그 의도를 보여줄 상징적 일꾼이 바로 최선희다.

그렇다면 ‘외무상 최선희’는 과연 누구일까? 북한 외교 브레인 역할을 하는 최선희는 참말로 우연한 기회에 김정은의 눈에 들어 인생의 행운과 기회를 얻은 몇 안 되는 북한 여성 엘리트다. 김정은의 신임을 얻고 있는 최선희는 독특한 출생의 비밀을 갖고있다.

6·25전쟁 직후 북한에는 부모 잃은 수많은 고아가 생겨났다. 김일성은 수천 명의 고아를 사회주의우방국들에 보내 위탁 보육을 진행했다. 그러다 북한 사회가 서서히 안정을 찾으면서 해외 입양을 보내는 대신 내부에서 고아를 입양하는 게 장려됐다.

김일성 본인도 직접 고아들을 입양했다. 김일성을 본받아 북한 정권 고위 관료들을 중심으로 고아를 입양하는 사회 운동이 전개됐다. 1964년에 태어난 최선희도 그렇게 새 부모를 만난 고아 중 하나였다.

1965년경 최선희는 내각 총리를 지낸 최영림의 수양딸이 됐다. 최영림은 북한에서 ‘혁명 1세’로 불리는 김일성의 측근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출신 성분과 사회 성분으로 구분하는 북한 계급사회에서 최영림의 수양딸이라는 우수한 출생 이력을 지닌 최선희는 남들과 다른 출발선에 섰다. 최선희는 우월한 출신을 바탕으로 평양외국어대학에 입학했고, 이후 유학을 떠나 국제 무대를 보는 시각을 길렀다. 엘리트 외교관 양성의 특수 교육과정을 밟은 셈이다.

아울러 최선희는 김정은의 ‘여성 간부화 정책’ 독려의 수혜를 입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세계적인 여성 존중 흐름을 반영하고자 했다. 주민들의 사회적 인식 수준을 높이고 세습적이고 가부장적인 북한의 봉건제도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를 위해 김정은은 철저한 법치국가 건설과 공공 사회질서 수립, 나이를 고려하지 않는 인재 등용에 나섰다. 김정은은 김평애 전 북한 노동당 간부 부장에게 수차례 지시를 내려 여성 간부화 비중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경직된 북한 간부 사업 원칙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오랜 관성을 단번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훗날 자신의 지시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한 김정은은 김평애를 질타하기에 이르렀다.

최선희가 핵심 요직인 부상(차관)으로 승진하게 된 배경은 다소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지난 2018년 2월, 김정은이 참석하는 국가 연회에 외무상(장관), 제1부상(제1차관), 미국 담당 부상(미국 담당 차관)이 참석하는 것으로 사전에 통지돼 있었다. 한성렬 당시 미국 담당 부상이 ‘미국 간첩 혐의’로 검거돼 조사받고 있어 참석이 불가했으나, 실무진의 실수로 잘못 기재된 것이다.

김정은이 신원보증, 인사검증 건너뛰고 초고속 승진
이미 공지가 나간 뒤라, 외무성에서는 ‘한성렬 공백 채우기’에 나섰다. 그 결과, 한성렬 직속 관료인 최선희 당시 북미국장이 앉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정은은 이날 행사에서 최선희를 ‘국장’이 아닌 ‘부상’으로 호명했다. 이에 실무진이 급히 미국 담당 국장이라고 수정 보고하자, 김정은은 화를 내면서 “능력 있는 여성 엘리트를 적극 등용하라”는 자신의 지시 관철에서 소극성을 보이는 데 분노를 표했다. 자연스레 옆에 있던 김평애 당 부장을 질책했다.

북한에서 간부 임명 절차는 신원조회와 추천의 과정을 거친다. 발령이 이뤄지기까지는 보통 몇 개월이 소요된다. 그러나 최선희의 경우는 보증인이 김정은이라는 점에서 예외였다. 실제로 최선희는 다음날, 외무성 국장에서 부상으로 깜짝 승진했다.

한성렬 전 부상은 끝내 외무성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한성렬은 결국 2019년 2월 간첩혐의로 강건군관학교에서 공개처형됐다. 처형 현장에는 외무성, 외교단사업총국 등 대외 관련 부처 부국장 이상 간부들이 참석했다. 한성렬 외에도 3명의 외교관이 미국 간첩 혐의를 받아 숙청됐다.

최선희가 부상(차관)에서 제1부상(제1차관)으로 승진하게 된 배경도 독특하다. 최선희는 김계관 전(前) 외무성 제1부상의 적극적인 추천 덕에 제1부상으로 승진했다. 김계관 전 제1부상은 6자회담 북한 측 수석대표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김계관의 전담 영어 통역사가 바로 최선희였다. 장기간 통역을 도맡은 최선희는 김계관과 친분을 쌓게 됐다.

친분은 이후 신임으로 발전했다. 김정은의 대미 관련 문의 전화를 최선희가 대신 받을 정도였다. 김정은의 전화를 ‘위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아무리 최선희가 부상이더라도, 제1부상에게 걸려 온 김정은의 전화를 대신 받는다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김계관이 최선희에게 대신 전화 받게 한 이유는, 김계관의 건강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김계관은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다. 그 이유는 제1부상이 수행해야 하는 업무 강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제1부상은 부상과는 달리, 퇴근도 못 할 정도로 많은 일을 처리한다. 외무성 내부에서 ‘제1부상’은 최고존엄의 압박을 견뎌내야 하는, 정신적 고통이 가장 큰 자리이기도 하다.

결국 김계관은 제1부상직을 내려놓고 은퇴한다. 그는 은퇴 직전 후임자로 최선희 미국 담당 부상을 제1부상으로 김정은에게 적극 추천했다. 그 결과, 최선희는 부상에서 제1부상으로 승진하며 권력의 중심부로 한층 더 걸어갔다. 이후 최선희에게 또 한 번 운명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상, 즉 장관이 될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리용호 전 외무상과 허철 전 외무성 초급 당비서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

리용호 숙청 후 최선희에게 찾아온 또 한번의 행운
지난 2019년 12월, 리용호 외무상은 비리 혐의를 받아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당시 북한 당국이 주중 북한대사관에 근무하던 서기관의 횡령 의혹을 조사하던 중, 리용호의 이름을 적발한 것이다. 이에 당국은 리용호를 상납받은 상급자로 분류했다. 그 결과, 노동당은 2019년 12월에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리용호에 대한 비판을 집중적으로 했다. 리용호와 더불어 허철 전 외무성 초급 당비서 또한 연대 책임으로 경질됐다. 후임으로 리선권 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외무상에 올랐다. 리선권은 지난 문재인 정부 때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측 대표를 맡으며 대한민국에도 이름이 잘 알려진 인물이다.

2018년 12월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종료회의에서 공동보도문을 교환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실 북한에서는 리용호가 2016년 한 차례 위기를 넘겼다고 평가한다. 태영호 당시 주영국 공사(현 민주평통사무처장)의 망명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통상 망명 사건이 발생하면 외무성은 김정은에게 ‘반성하는 의미’로 ‘대책안’을 세워 보고해야 한다.

리용호 외무상이 연대적 책임을 지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나, 당은 그가 외무상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생긴 일이기에 처벌하지 않기로 결론 내린다. 대신, 사상교양을 잘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허철 전 초급 당비서를 경질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결국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은 최선희에게 희소식으로 작용한다. 외무성 내부에서 자신을 견제할 만한 관력(官力) 있는 권력자들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리용호 이후 리선권이 잠시 외무상을 맡았으나, 결국 최선희는 2022년 외무상에 올랐다. 김정은의 남다른 관심 속에 기회와 행운이 가득 찬 최선희가 이번에도 손쉽게 올라선 것이다.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권력 경쟁 구도 속에서도 행운의 여신은 최선희 편이었다. 결정적 배경은 2018년이다. 그해 하반기, 당시 북미국장이던 최선희를 필두로 외무성 내 미국 전문가들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내부에선 격변이 발생했다. 정확히는, 외무성이 북·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배제된 것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준비 과정에서부터 외무성이 배제된 채 진행됐다. 이것이 하노이 협상 결렬의 핵심 이유다.

2019 하노이 북·미 회담 앞두고 생긴 北 ‘격변’
배경은 이렇다. 2018년 하반기,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건·사고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발단은 김정은의 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한 사고로부터 비롯됐다. 외무성에는 전통적으로 불시에 걸려 오는 통치자의 전화를 즉각 받아야 하는 암묵적 룰이 있다.

이를 위해 외무성 제1부상은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게 관례다. 사고가 난 날에도 여느 때처럼 김계관 제1부상이 사무실에 있었다. 그러나 잠시 일을 보러 사무실을 비운 찰나에 김정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결국 김계관 제1부상은 최고존엄의 전화를 받지 못하고 말았다. 화는 쌍으로 온다 했던가. 김정은은 곧바로 외무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외무상도 자리를 비운 상황. 크게 화가 난 김정은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긴박한 상황에 외무성이 안일하다고 질타했다.

전화 사건이 외무성을 배제하기로 결심한 결정적 계기였다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외무성의 잇따른 국가 배신적 행위와 부정부패 사건에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외무성 중국담당 부상이 중국 간첩 혐의를 받고 숙청되는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한성렬 미국담당 부상도 미국의 간첩으로 숙청당하자, 김정은은 외무성에 대해 회의감을 갖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유로 김정은은 외무성을 불신하면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주체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결국 김정은의 고민은 악수(惡手)로 이어졌다. 외무성을 배제하고 리수용 노동당 국제부 비서에게 북·미 정상회담을 주관하도록 지시를 내린 것이다. 정상회담 준비에 착수한 리수용은 이내 당 국제부에 실무 경험을 갖춘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직시한다. 당내에서 실리적인 인물로 정평이 난 리수용은 곧바로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통전부) 부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통전부 소속 해외파견 정보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주도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그 이유는 정상회담이 실패하면 김영철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함이었다. 즉, 리수용은 일찌감치 당 국제부 전력으로는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반면, 김영철은 김정은에 대한 ‘과한 충성심’에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다. 김영철은 외무성에서 최선희와 김혁철 외무성 부상만 통전부로 데려오면 정상회담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봤다. 그 결과, 최선희는 통전부 고문으로 영입됐고, 김혁철은 당에 편입됐다. 알려진 바로는, 김영철은 2019 북·미 정상회담 직전까지만 해도 “하노이 수뇌상봉(정상회담)은 성사(성공)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주위에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외무성은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등 북·미와 관련된 모든 회담 준비 서류를 통전부로 이관하는 ‘굴욕’을 당했다. 북한 내 국제감각을 지닌 최고 엘리트들이 통전부에 대미 자료를 넘기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외무성의 대미 협상 역량이 배제된 채 정상회담을 강행한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김정은이 국제적으로 망신당한 ‘하노이 노딜(No deal)’로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 28일 오후 하노이 메리어트 호텔 기자회견장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오른쪽은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 연합뉴스
“군축을 말하지만 군축을 원치 않는다”
외교에 문외한인 통전부가 주관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는 예견된 거나 다름없었다. 모든 책임은 당 국제부와 통전부가 그대로 떠안았다. 그 결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동원됐던 당 요원들은 모두 숙청당했다. 반면, 최선희는 외무성 소속이란 점 때문에 숙청의 칼날을 피해갔다.

역설적으로 ‘하노이 결렬’로 외무성의 입지는 강화됐다. 최선희를 포함해 회담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원됐던 외무성 요원들은 모두 경질을 피하고 업무에 정상 복귀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은 외무성의 존재 가치와 실력을 새삼 인정하기 시작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019년 3월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관심은 돌아온 트럼프와 한국의 진보 정권 시대를 맞이하는 북한의 자세로 모아진다. 필자는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와 이후 통전부에 휘몰아친 폭풍을 똑똑히 목도한 최선희가 북·미 정상회담에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향후 북·미 정상회담을 전망하기 위해선 최선희의 성향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선희는 대미 전략가보다 관료형에 가깝다. 김계관 전 제1부상은 최선희의 전문가적 자질 결여를 우려할 정도였다. 최선희는 고집이 세고 관료 보신주의가 강하다. 북한이 핵 보유라는 확실한 ‘우위적 협상 카드’ 없이는 트럼프 2기 북·미 정상회담에 임할 가능성이 낮은 이유다.

필자는 그런 점에서 〈월간중앙〉 3월호에 기고한 바와 같이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진행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핵 보유를 철저히 각인시킨 이후, 북·미 정상회담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북한은 미국의 ‘핵 포기’ 요구를 ‘핵 군축’ 협상으로 전환하기 위해 원론적인 의제를 대거 테이블에 올려놓을 가능성이 크다. 유의할 점은, 북한은 핵 군축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핵 군축’을 미국과의 협상 의제로 상정해 장기전을 유도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국에는 군축과(課)가 있다. 북한은 군축과의 존재를 언급하며 미국에 군축 협의를 하자고 제안할 것이다. 그러나 군축과의 업무가 한·미가 생각하는 것처럼 ‘군축’을 위한 것이 아니란 점을 유의해야 한다.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파키스탄과 같은 ‘관념적인 핵보유국’ 지위에 오르는 것이다. 김정은도 북한이 미국, 러시아처럼 공식적인 핵보유국 반열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속내를 알면, 향후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전략적 포석에 유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다음 북·미 정상회담은 통전부가 아닌 외무성이 맡을 것이란 점은 가뭄에 단비 같은 희소식이다.
한진명 김일성종합대학 불어과 졸업. 북한 외무성 6국(아프리카·중동·라틴아메리카 담당국)과 7국(주체사상 대외선전국), 주베트남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2015년 1월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을 나와 공장 근로자로 생활하고 있다.


한진명 前 주베트남 북한 서기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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