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비+간접비로 트럼프 요구 'GDP 5%' 구색 갖추기
단출한 일정·공동성명도 간략히…IP4 초청 전통은 유지
D-2 나토 정상회의 목표 '트럼프를 만족시켜라'
국방비+간접비로 트럼프 요구 'GDP 5%' 구색 갖추기
단출한 일정·공동성명도 간략히…IP4 초청 전통은 유지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32개국 정상회의가 2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다.
이번 정상회의는 유럽이 최대 안보위협으로 여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충돌로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이 한층 고조된 가운데 열린다.
그러나 미국이 나토에 대한 기여도를 줄이고 유럽 안보에서 발을 뺄 것이라는 우려가 엄습하면서 소위 '트럼프 만족시키기'가 사실상 올해 회의 핵심 목표가 됐다.
◇ 트럼프 압박에 쥐어짜 낸 'GDP 5%' 구상
올해 핵심 의제는 새로운 국방비 지출 가이드라인이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32개국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직접 군사비 3.5%, 간접적 안보 관련 비용 1.5%, 총 5%를 지출하자는 새 가이드라인을 제안했다. 달성 시점은 2032년 혹은 2035년이 거론된다.
직접 군사비만을 포함하는 현행 GDP 2% 목표치를 3∼3.5%로 증액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유럽 내부에서도 이미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 위협에 대한 우려가 커진 탓이다.
그러나 범주가 모호한 '안보 관련 비용'은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GDP 5%' 요구안에 맞추기 위해 고안됐다.
싱크탱크 유럽외교관계협의회(ECFR)의 제레미 샤피로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뤼터 사무총장 계획이 영리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랑할 만한 것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탈리 토치 이탈리아 국제문제연구소 소장도 "(간접비) 1.5%는 비현실적이며 트럼프를 위한 홍보용 숫자"라며 "5%라는 마법 같은 숫자가 (트럼프의) 적대감이 아닌 무관심을 보장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긍정적"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간접비 포함이더라도 5%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2014년 합의된 가이드라인인 GDP의 2%를 넘긴 나라는 작년 기준 아이슬란드를 제외한 31개국 중 23개국이다. 아이슬란드는 상비군이 없어 나토 공식 통계에서 제외된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지난 19일 뤼터 사무총장에게 GDP 5% 목표가 불합리하다면서 스페인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촉구했다. 스페인은 지난해 기준 국방비가 GDP의 1.24%로 가장 낮다.
산체스 총리와 같은 정당 소속인 호세프 보렐 전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1일 엑스(X·옛 트위터)에 "GDP 5%는 트럼프를 만족시키기 위한 자의적 목표"라며 스페인의 반대가 정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GDP 대비 국방비 비중이 낮은 이탈리아,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등도 5%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나토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구색 갖추기용 합의'가 성사되더라도 이행을 강제할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내 유럽과 갈등만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 대폭 줄인 회의…트럼프 '돌발 행동' 우려 여전
24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열리는 올해 32개 회원국 정상이 참석하는 본회의는 둘째 날 2시간 30분간 일정으로 한 차례만 개최된다.
지난해까지 연례 정상회의 기간에 본회의가 2∼3차례씩 열리던 것과 대조적이다.
본회의 외에 32개국 정상이 모두 참석하는 공식 행사는 24일 네덜란드의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이 주최하는 부부 동반 환영만찬이다. 나머지는 부대 행사로 일정을 채웠다.
다자회의를 선호하지 않고 즉흥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해 회의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한 '맞춤 일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17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도중에도 급거 귀국했다.
나토에서 미국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나토 조기 퇴장은 G7 때보다 파급력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공동성명도 A4 한 장 분량, 다섯 문단으로 대폭 줄어들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의견 대립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 때인 작년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44문단에 달했다.
돌발 상황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미국 국방·국무장관이 나토 회의 석상에서 그랬듯,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정상들 면전에 미군 감축 등에 관한 발언을 할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 여러 차례 했듯이 나토 동맹을 약화하는 발언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덴마크와 캐나다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에 대한 영토 확장 야망을 다시 거론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해설했다.
◇ 우크라전 사실상 '뒷전'…IP4 초청 전통은 유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올해 회의에도 초청됐으나 일단은 24일 공식 환영만찬에만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해까지 젤렌스키 대통령 참석 하에 개최된 '나토-우크라이나 이사회'가 올해는 장관급으로 격하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선 G7에서 무산된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이 드라이브를 걸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협상에 대한 언급이 부쩍 줄어들었다. 이스라엘과 이란 무력충돌 사태 해결을 이유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소통이 오히려 늘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바라는 대(對)러시아 추가 제재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올해 공동성명 문안 조율 과정에서 미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언급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지난해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 자격을 포함한 유럽·대서양과의 완전한 통합을 향한 불가역적인 길(irreversible path)을 걷는 것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명시됐다. 우크라이나에 2025년 최소 400억 유로(약 60조원) 상당을 지원하겠다는 서약도 담겼다.
예년과 변함이 없는 부분은 한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 등 인도·태평양 4개국(IP4)이 초청된 점이다.
나토는 2022년 이후 매년 IP4를 장관급·정상회의에 초청하고 있다. 뤼터 사무총장은 최근 IP4의 참석이 '전통'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참석이 확정되면 24일 나토 퍼블릭포럼, 환영만찬 등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G7에서 불발된 트럼프 대통령과 첫 양자 회담 성사 여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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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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