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저자 하노벡은 “역사적으로 돈을 발행하는 권력이 남용될수록 경제는 더 불안해지고 결국 화폐가치는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화폐 증발은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부른다. 실제로 팬데믹 이후 주요 중앙은행의 자산은 급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GDP 대비 35%, 유럽중앙은행은 60%, 일본은행은 125%에 달하며, 이 자금으로 금, 국채, 주식을 매입했다. 시계를 2000년으로 되돌려 보면, 주요 선진국의 GDP 대비 통화량은 평균 3~5배 증가했다. 실물경제 성장보다 통화량 증가가 훨씬 컸다.
상대적으로 통화 팽창이 덜했던 국가는 미국이다. 이는 그동안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서 견고한 위상을 유지해온 것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국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추진 중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이 상원을 통과해 영구 시행될 경우, 미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현재 120%에서 2050년까지 최대 250%에 이를 수 있다. 이는 연방정부의 이자 부담과 재정적자 확대를 뜻한다. 결국 정부와 일체화된 중앙은행이 국채를 직접 사들이는 양적완화를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신호다. 물론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미국 내 제조업 기반이 강화되면서 세수가 늘고 무역적자가 줄어든다면 긍정적인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더 우려되는 건 관세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이다. 이미 지난 4월부터 미국의 수입 자동차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고, 의류나 신발 같은 경공업 제품 가격은 두 자릿수로 급등하고 있다. 관세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행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조짐이 나타난다는 점이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출을 늘리도록 설계된 새 예산안이 하반기부터 관세발(發) 물가 상승과 겹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훗날 사람들은 이를 ‘트럼플레이션(Trump+Inflation)’의 재앙이라고 부를지 모른다. 따라서 앞으로 국내외 자산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변수는 ‘금리 상승 위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6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여름 동안 관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스태그플레이션은 오래가지 않는다. 물가 급등은 결국 경기 침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몇 달 안에 관세가 급격히 낮아지고, 중동발 유가 불안까지 해소된다면 ‘트럼플레이션’ 우려는 기우에 그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하반기 세계 경제는 다시 안정을 되찾고, 증시 역시 새로운 상승 흐름을 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