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래의 상징은 ‘날아다니는 자동차’였다. 요즘 그 자리는 사람처럼 걷고 말하는 로봇, 휴머노이드가 차지했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옵티머스, 사티아 나델라가 주목한 피겨(Figure) 01, 그리고 최근 공개된 유니버설 로보틱스의 범용 휴머노이드까지, 세계 기술 리더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람 닮은 로봇’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기술의 진화는 꼭 인간의 외형을 따라야만 하는 걸까? 우리는 휴머노이드를 보면 사람처럼 움직이니 사람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는 다리보다 바퀴가 더 빠르고, 손보다 그리퍼(gripper)가 더 정확하며, 표정보다 디스플레이가 더 직관적이다. 그뿐 아니라 조금만 더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역량을 보완하는 기술’이다. 오히려 사람 같은 외형은 효율보다 기대를 자극한다. 감정을 요구하고, 관계를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휴머노이드는 기술보다 심리, 사용자 경험(UX)보다 윤리의 영역에 가깝다.
사람 같은 외형, 기대 자극할 뿐
인간 닮았다고 일 잘하지 않아
로봇의 형태보다 더 중요한건
인간을 잘 도울 수 있느냐 문제
그렇다면 우리는 로봇이 필요한가? 지금 세계는 심각한 노동력 부족이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인구 감소, 고령화, 반복 업무의 자동화 수요. 그 해답은 인간형 로봇이라기보다 일을 대신하거나 협업할 수 있는 디지털 존재들이다. 결국 본질은 사람을 대신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존재, 즉 디지털 노동력의 확보다. 콜센터에선 GPT 기반 상담 에이전트가 24시간 감정 소모 없이 일하고, 물류창고에서는 팔도 얼굴도 없는 무인 운반차(AGV)가 정확하게 움직인다. 형태는 사람과 다르지만, 성능은 사람을 능가한다. 사람처럼 생기진 않았지만, 사람처럼 일하거나 사람보다 더 일을 잘한다. 지금 필요한 로봇의 정의는 ‘사람 같은 로봇’이 아닌 ‘일을 잘하는 존재’이며, 우리가 진짜 준비해야 할 건 인간을 꼭 닮은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일을 잘하는 존재다.
견지망월(見指忘月).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봐야 하는데, 그 손가락만 본다’는 뜻이다. 외형이 도리어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유교 사상에서 유래되었다. 우리가 휴머노이드를 바라보는 시선과 기술집착이 기술의 본질보다 형상에 집착하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진 않은가. 사람처럼 생긴 로봇에 대한 집착이 혹여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착각은 아닐까? 물류창고의 AGV는 팔도 없고 얼굴도 없지만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GPT 기반의 상담 에이전트는 콜센터의 스트레스를 줄이며 24시간 일한다. 제조 현장에서는 단순 반복을 대신하는 모듈형 로봇들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 사람처럼 생기지 않아도, 사람보다 더 잘 일하는 로봇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잠시 ‘형상(휴머노이드)’에 대한 집착을 멈추고 ‘기술철학’을 되짚어봐야 한다. 그것은 자동차여도, 건물이어도, 가전이어도, 가구여도, 어떠한 다른 모습이어도 괜찮다. 인간과 보완적인 디지털 노동력을 기업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형태에 매몰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기업에겐 미래의 얼굴이자 자본 유치의 상징이고, 소비자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티저다. 테슬라의 옵티머스는 아직 창고 한구석에서 천천히 걷고 있지만, 그 한 걸음은 기업의 비전을 팔고, 자본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브랜드의 메시지로 작용한다. 휴머노이드를 준비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단순히 기술의 선택이 아닌 이유다. 또한 우리는 지금 기술의 진화를 보며 감탄하면서도, 자칫 그 외형에 매몰될 위험 앞에 있지는 않은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사람을 흉내 내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걷는 존재를 상상해야 한다. 우리가 진짜 준비해야 할 것은 사람처럼 생긴 존재가 아니다. 기술이 풀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은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존재, 사람의 삶을 돕는 기술의 방식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디지털 노동력의 시대, 형태보다 기능, 외형보다 관계, 모방보다 협업이 더 중요한 이 시대에, 기술의 진화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어떻게 사람과 공존하게 할 수 있을까?’다. 손가락이 아니라 진짜 달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