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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추락 이후, 국민의힘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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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2 08:30 2025.06.2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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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
지난주 캐나다 카나나스키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관세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이스라엘 분쟁을 논의하느라 모인 각국 정상들의 정당 소속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보수가 다섯(독일·프랑스·일본, 그리고 극보수인 미국·이탈리아), 진보가 둘(캐나다·영국)이다. 보수는 여전히 민주주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지구촌 정세와 한참 동떨어져 있는 게 한국의 보수정당이다. 국민의힘에는 침체라는 말도 사치스럽다. 이달 초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크게 패한 것은 위기의 한 단면일 뿐이다. 지난해 비상계엄 이후 지속되는 극심한 혼란과 내부 다툼, 지지층의 지속적인 위축, 극우세력으로부터 늘어나는 위협 등 총체적 위기가 유령선 같은 국민의힘을 휘감고 있다.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보수 야당
다선 의원들 권력 독점부터 깨야
허울뿐인 원내 정당론 폐기하고
후보 교체 사태부터 반성·사과를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안철수 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제21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다양한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이른바 원내 정당 중심론과 연결된 두 가지 폐해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첫째, 영남과 일부 강원지역의 안전 의석에서 쉽게 당선되는 원내 다선 의원들이 독점하고 있는 정당 내부 권력. 둘째, 이들 안전지대 출신 당내 권력자들의 시대적·정치적 감수성의 붕괴.

독자들에게 원내정당론이라는 개념은 다소 낯설 수도 있는데, 이른바 미국식 정당 경험을 집약한 개념이다. 일부 학자들이 미국식 정당이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따르면 유럽의 이념 정당들과 달리 미국의 정당들은 방대한 대중조직이 없고 이념적 색채도 강하지 않다. 지지자들은 느슨하게 선거 과정을 통해서만 정당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정당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것은 정당 소속의 상하원 의원들이다. 이들이 의회정치를 주도하면서 보수-진보 타협이 가능하고 이념 대결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물론 원내정당 중심 정치는 미국에서도 과거 이야기일 뿐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미국식 원내정당론은 한국에 건너와 그저 다선 의원들의 권력 독과점을 정당화해주는 장식으로 변질하였다. 다선 의원들의 정당 권력 독과점이 얼마나 피폐한 상태에 이르렀는지는 지난달 국민의힘에서 벌어졌던 대통령 후보 교체 쿠데타 과정을 뜯어보면 된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뽑은 대선 후보를 무효화하려 했던 당 비상대책위, 한밤중에 다시 대선 후보를 뽑겠다고 전국위원회를 소집하는 권력, 대선 후보에게 외부 인사와의 단일화를 강요하는 장막 뒤의 권력. 모두 다선 의원들이 주도한 정치공학이다.

미국식 원내정당이 한국 땅에 와서 타락한 메커니즘은 두 가지다. 첫째, 원내정당, 즉 다선 의원들이 장악한 정당 지도부에 너무나도 많은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당 지도부는 연간 수백 억원에 이르는 국고보조금을 집행하는 알토란 같은 금권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선출의 규칙 자체를 떡 주무르듯 변경하는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당 지도부가 후보 선출 절차, 규정을 마음대로 변경하는 나라가 미국뿐 아니라 G7 중에 하나라도 있던가?

미국과의 또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당 지도부 권력을 독점하는 다선 의원들의 구성이다. 당내 권력을 쥔 다선 의원들은 대부분 국민의힘 깃발로 쉽게 당선되는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일부 강원의 안전 의석 출신이다. 경쟁이 치열하고 시시각각 유동하는 사회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수도권에는 국민의힘 다선의원이 극소수일 뿐이다. 결국 TK, PK의 정체된 인사들이 국민의힘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는 다선 의원들도 예외 없이 개방형 경선제를 통과해야만 본 선거에 나설 수 있는 미국의 정당 현실과는 전혀 다르다.

권영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문수 대통령 후보 자격 취소·한덕수 전 총리 입당 및 대선후보 등록 과정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동욱 수석대변인, 권 전 비대위원장, 강명구 의원. 뉴스1
결국 논의의 초점은 누가 어떻게 원내 다선 의원들의 독과점 권력을 타파할 수 있는가에 있다. (당 대표를 새로 뽑는 8월 전당대회가 급한 것이 아니다.)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우선 출발은 가칭 ‘국민의힘 정당민주주의 검토위원회’를 시도해보는 것이다. 가깝게는 5월 10일 새벽 당 지도부의 행동이 과연 “정당의 목적, 조직,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부합하였는지를 국민의힘 스스로 정밀하게 조사하는 것이다.

1970년대 미국의 거대한 정당개혁을 주도했던 민주당 ‘맥거번-프레이저 위원회’도 당내 특별위원회였다. 1968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앞서가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자 민주당 지도부는 당원, 지지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경선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않았던 험프리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결과는 역사적 패배였다. 패배 이후 뜨거운 개혁 열망을 안고 출범한 맥거번-프레이저 위원회는 미국 민주당을 투명하고 개방적인 정당으로 바꿔놓게 된다.

국민의힘의 청년 당원들과 일부 초재선 의원들은 과연 지금의 위기를 변화를 향한 몸짓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혹은 다선 의원들은 이번에도 현란한 버티기로 권력 독점을 이어갈 것인가.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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