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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의 마켓 나우] 정부의 반도체 미션은 ‘상생 생태계’ 만들기

중앙일보

2025.06.23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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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미국은 TSMC와 삼성의 투자 유치, 인텔과 마이크론에 대한 지원을 통해 차세대 반도체 제조 주도권을 노린다. 하지만 이 전략엔 허점이 있다.

메모리·파운드리·팹리스 등 반도체 소자 산업(650조원) 대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은 약 40%(264조원) 규모이다. 우리나라도 소자 산업(178조원) 대비 소부장 산업은 33%(59.5조원) 수준이다. 하지만 소부장 산업은 첨단 반도체 공장 운영의 핵심이므로 동반 성장해야 한다.

김지윤 기자
공장을 짓는다고 생산이 저절로 되지 않는다. 그 주변에 소재 공급, 장비 유지, 공정 운영 등을 지원할 생태계가 함께 조성되어야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하다. 실제로 TSMC 협력사들이 미국에 지사를 설립할 때 높은 인건비 부담으로 생태계 구성이 어렵다 보니 생산비용이 세 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첨단반도체 제조 리쇼어링을 위해서는 전후방 산업 생태계가 함께 잘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반도체 제조 지원 생태계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중 수출규제와 중국 소부장 기업의 빠른 성장 여파로 인해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대중 수출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반도체장비 업계를 보면 글로벌 시장의 70% 이상을 미국·일본·네덜란드의 빅5(AMAT, ASML, Lam Research, TEL, KLA)가 차지하고 있다. 수많은 국책과제, 인력양성사업, 투자펀드 조성 등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든든한 소부장 기업을 만들지 못하고 중국의 추격에 취약한 상황이 되었을까?

그 해답은 기업의 수익률에서 찾을 수 있다. 2024년 국내 소자 기업들의 평균 순이익률은 많이 낮아졌어도 21.6%에 달했지만, 소부장 기업은 6.6%에 그쳤다. 이처럼 수익구조가 취약하니 임금 격차가 벌어지고, 우수인력 확보도 어렵다.

일본의 대표적 장비기업인 TEL은 처음엔 장비수입상으로 시작하여 자체 장비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자국 소자 기업들이 ‘제값 주기 운동’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줘서 세계적 강자로 성장했다. 반면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매년 ‘단가 후려치기’를 통해 채 여물지 않은 전후방 소부장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깎아버렸다.

정부가 어떤 지원을 하든 그 열매를 대기업이 가져가 버리는 생태계에서는 강소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는 단발성 기업 지원이나 효과 없는 인력양성 사업으로 돌파구를 만들기 어렵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한 방파제가 되어주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식적인 거래질서를 만드는 시스템 관리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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