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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여전히 읽는 사람들 속에서

중앙일보

2025.06.2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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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서울국제도서전을 다녀왔다. 독자들과 출판인들에게는 한 해 중 가장 큰 행사다. 현장판매를 진행하지 않고 예매자들에게만 입장을 허용한다는 공지가 시작 전부터 열기를 짐작게 했다. 수요일 아침이 되자 관람객들은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섰고,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전시관은 북적였다. 혹자는 그런 것은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그래 봤자 책을 읽는 사람들은 줄고 있고 거기 방문한 사람들은 책이 아닌 굿즈를 사러 가는 것이라고 비관적인 말을 하는 모양이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통로를 꽉 채운 사람들은 구매한 책 몇 권씩을 끌어안거나 끌고 다니며 또 살만한 것이 없는지 호시탐탐 돌아다녔던 것이다. 종합독서율은 계속 떨어진다지만, 책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계속 그 자리에 있는 모양새다.

독서만이 인간에게 최상의 지혜를 줄 수 있다거나 반드시 독서를 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할 생각은 없다. 단지 읽는 사람들은 왜 도통 사라지지 않고 그곳에 있는지, 라디오가 발명되고 TV가 발명되고 심지어는 인공지능이 발명되는 시대에 책에서 무엇을 발견하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읽기와 쓰기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산문 중 하나인 『다정한 서술자』(2022)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책을 펼칠 때마다 책장 표면과 우리 눈 사이 어디쯤에서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어떤 인물의 가장 미묘하고 복잡하고 세밀한 경험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또 다른 누군가의 앞에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 게다가 그 모든 게 실존 인물의 삶보다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읽는 사람들은 기적을 만지는 사람들이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영상에 빠지다가도, 다른 이의 경험 안으로 들어가 보는 기적을 잊지 못해 또다시 책 근처를 서성거리게 되는 것이다.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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