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파는 물건을 왜 이렇게 정성 들여 아름답게 만들까. 이윤을 넘어선 요구가 인간에겐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보면 꽃처럼 피어 있다.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정(情)을 자아낸다.’ 1937년 5월 2일. 당시 쉰을 바라보던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1889~1961)가 일본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항구도시 부산. 재래시장인 부산진시장을 찾은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꽃처럼 알록달록한 갈대 빗자루였다. 길이 75㎝, 질 좋은 낙동강 갈대를 색실을 섞어 가지런히 엮어 만든 이 빗자루에 마음을 뺏긴 그는 빗자루를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와 민예관에 전시했다.
88년 전 낯선 일본인의 손에 들려 바다를 건너온 이 빗자루를 지난 20일 일본 도쿄에 있는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오늘로 이어지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마음과 시선’ 특별전시회에서 만났다. 유리함 속에 놓인 빗자루 앞. 삼삼오오 모여든 관람객들은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야나기는 서민의 삶 속에서 태어난 조선의 민예(民藝)를 일본에 널리 알린 인물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일본인으로도 불린다. 민예관을 도쿄에 세운 이듬해, 그는 유명 도예가인 가와이 간지로(河井寬次郞·1890~1966), 하마다 쇼지(浜田庄司·1894~1978)와 함께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를 돌아본다. 그는 자신이 바라본 재래시장의 풍경, 당시 만난 조선의 장인들과의 이야기를 원고지에 남겼는데 ‘공예’ 잡지에 이를 ‘전라기행’ 이란 이름으로 연재했다. 이 원고들은 이후 『지금도 이어지는 조선의 공예』(1947)란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재래시장에서 그가 발견하고 사랑하게 된 것들은 거창한 작품이 아닌 생활에 녹아있는 소소한 것들이었다. 아낙네들이 항아리를 이고 갈 때 쓰는 똬리, 그림이 그려져 있는 담양의 낙죽 단소, 대나무를 잘게 쪼개 만든 반궤함과 전주의 합죽선…. 그는 여행 나흘 만에 도착한 나주에서 한 사람을 만난다. 당시 이미 나주반(盤)은 일본인들 사이에도 이름을 떨쳤는데, 그가 만난 이는 명장 이석규(1866~1940)다. 소반 2점을 사들인 야나기는 이석규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모양에는 군더더기가 없고, 칠은 정직하며, 일에는 실수가 없다.’ 더할 나위 없는 극찬이다.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의 해다. 떠들썩했던 기념행사는 끝났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다. 빗자루 하나, 알록달록 수 놓인 베갯잇을 보고 “만들어진 것에 대한 놀라움은 만드는 사람에 대한 놀라움이어야 한다”는 말을 남긴 야나기의 말이 오늘도, 내일도,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