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에 거주하는 지인이 “서울 강남에 어떤 집을 사면 좋겠냐”고 물어왔다. 50대 중반이라 자녀교육을 위한 것도 아니고, 머지않아 퇴임할 그의 뜬금없는 요청이라 이유를 물어봤다. 강남 아파트에 투자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20년 전에 매입한 충청권 아파트값은 2배가 안 됐는데, 강남 아파트는 10배가 됐다는 것이 그의 불만이었다. 주택시장 왜곡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최근 들어 주택시장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은 20주 연속 상승하면서 2018년 9월 이후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반면 지방의 주택 미분양은 해소될 기미가 없다. 지난 3년의 주택 인허가와 착공 건수가 그 이전 10년 평균보다 30~50% 감소한 결과가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1세대 1주택 정책의 부작용 심각
강남 수요만 폭발, 지방 소멸 가속
총자산·임대수입 따라 과세해야
그런데 유사하게 공급이 감소한 지방은 왜 미분양이 급증한 것일까. 그 중심에 ‘1가구 1주택’ 정책이 있다. 한 가구가 두 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하는 것은 투자 또는 투기라는 단순 논리가 초래한 비극적 상황이다. 단 한 채를 고른다면 누구든 가격 상승 기대가 가장 높은 주택을 선택하게 된다. 나머지 주택은 팔아야 하는데, 그 주택을 사서 다주택이 되면 중과세를 맞을 테니 유주택자는 선뜻 나서기 어렵다. 결국 무주택자로 수요가 한정되니 주택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이 논리는 일견 합리적이다. 문제는 선택받는 ‘똘똘한 한 채’가 서울, 특히 강남에 몰릴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똘똘한 한 채 추구는 국토균형발전도 방해한다. 선택받지 못한 지방은 주택 수요가 더욱 위축되고, 가격상승 기대가 사라져 투자수요도 실종된다. 사줄 사람이 없으니 미분양은 증가하고, 건설 업체들은 지방사업을 접게 된다. 당연히 지방의 건설 일자리가 줄어들고 연관 산업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증가한 일자리 중 절반인 150만 개가 수도권 신도시에서 만들어졌는데, 주택공급이 지역경제에 주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주택시장이 죽으면 일자리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1가구 1주택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2023년 한국의 자가보유율은 약 60%였다. 나머지 40%는 셋집에 사는데, 공공임대주택 재고가 약 9%이므로 31%는 민간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약 700만 가구는 다주택자들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세계 어디에도 주택소유율이 100%인 나라는 없으며, 그런 목표를 갖고 있지도 않다. 결론적으로 1가구 1주택은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꿈일 뿐이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주택자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2주택자는 실수요 또는 임대주택 투자수요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서울 유주택자가 지방에 추가로 주택 한 채를 매입한다면 투자자로 봐야 한다. ‘5도 2촌’을 위한 세컨 하우스일 수도 있고, 귀촌을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지방 주택시장에 돈이 돌게 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인구 유출을 막는 데 상당히 기여한다. 국토균형 발전에 기여하므로 싱가포르처럼 본인이 사는 주택에 대해서는 오히려 세금을 감면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세금을 중과해야 할 다주택자는 갭투자로 수십 채를 보유한 진짜 투기자들이다.
보유세와 양도세도 보유 주택의 가격 총액을 기준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몇 채를 갖고 있는가보다는 총자산과 임대수입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이 형평에도 맞고 주택 정책적으로도 바람직하다. 지방에 주택 여러 채를 보유하고 임대 주택을 공급하는 사람이 서울 강남의 수십억짜리 아파트 한 채 보유자보다 보유세를 더 많이 내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부동산시장에 강남발 태풍이 불고 있다. 지난 몇 년의 공급 부족과 수요 쏠림의 결과가 지금 우리 삶을 덮칠 기세다. 수도권에서는 시장 불안으로 고통받을 것이고, 지방에서는 주택 투자 실종으로 소멸이 가속할 것이다. 이제라도 맹목적인 1주택 정책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수도권 수요를 지방으로 분산해야 한다. 지방주택을 매입하는 다주택자들에게 길을 열어줌으로써 이 거대한 태풍으로부터 국민을 구하기를 새 정부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