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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트럼프의 거친 입이 Fed 지배구조 위기를 부른다

중앙일보

2025.06.2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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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미국 중앙은행 110여년 역사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공개적으로 “어리석은 사람(stupid person)” “멍청이(dummy)” “얼간이(moron)” 등으로 불렸다. 입이 사납기로 소문난 뉴욕 월가의 트레이더들에 의해서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서다.

트럼프의 거친 입은 파월이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한 직후인 19일 열렸다. 자신이 세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서다. 그는 “파월은 정부 안에서 진심으로 가장 멍청하고 파괴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이고 Fed 이사회는 공모자”라고 일갈했다. 하루 뒤인 20일 한술 더 떠 해임이란 말까지 입에 올렸다. “Fed 이사회가 이 완전 얼간이를 왜 무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어쩌면 나는 그를 해고할지 여부에 대해 마음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Fed 의장을 공개 모욕해
“어리석은 인간”“얼간이”로 불러
파월, 물러나지 않고 버틸 수도
최악은 Fed 이사회-FOMC 충돌

차기 의장 놓고 경쟁 시작
갈등하는 도널드 트럼프(뒤)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은 트럼프가 파월을 의장에 지명한 2017년 11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가 파월을 공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첫번째 임기 때인 2018~19년 드러내놓고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욕설에 가까운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자신이 임명한 파월이 만만해 보여서일까. 트럼프는 2017년 파월을 Fed 의장에 앉혔다. 파월은 민주당 출신인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 의해 재지명됐다.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트럼프는 조금만 기다리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의장에 지명할 수 있다.

이미 차기 의장 자리를 놓고 경쟁은 시작됐다. 지난해 말까지는 케빈 해셋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이 1순위로 꼽혔다. 하지만 해셋은 트럼프 취임 직후 국가경제위원장에 지명됐다. 그 바람에 케빈 워시 전 Fed 이사가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워시는 파월의 통화정책을 비판하며 트럼프의 눈도장을 받으려 했다. 최근엔 크리스토퍼 월러 현 Fed 이사도 후보로 부상했다. 월러는 트럼프 눈에 들려는 듯 “늦어도 7월에는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트럼프 옥죄는 이자 부담
트럼프는 내년 5월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올해 1월 취임 직후부터 백악관 법률 참모들을 동원해 파월을 해임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미 국가부채가 천문학적이다. 36조220억 달러(약 4경9983조원)에 이르고, 연간 이자 부담만 1조2000억 달러(약 1650조원)에 이른다. 관세전쟁으로 세수가 조금 늘기는 했지만, 이란 공습 등으로 재정압박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다 트럼프는 감세정책을 추진 중이다. 감세는 관세전쟁의 충격을 완화하는 중요한 방파제다. 파월이 금리를 내려주지 않으면, 이자 부담이 더욱 커질 뿐 아니라 트럼프 경제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김영옥 기자
두 번째는 ‘조용한 해임’이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Fed 역사를 보면, 임기가 보장된 의장이지만 대통령에 의해 조용하게 해임된 적이 종종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미국인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폴 볼커를 1987년 물러나게 하고 앨런 그린스펀을 의장에 지명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때 레이건은 볼커에게 밀사를 보내 사퇴를 종용하기 전에 은밀하게 작업했다. 레이건 자신이 심은 Fed 부의장 맨리 존슨과 친공화당계 이사들을 움직여 볼커의 통화정책 결정에 반기를 들게 했다. 볼커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낸 회고록 『미스터 체어맨』에서 “존슨이 보고도 하지 않고 휴가를 떠나는 등 내 리더십이 흔들리는 증상을 느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Fed 내부의 반(反)트럼프 기운
요즘 Fed 내부엔 트럼프의 뜻에 따라 내부에서 파월을 흔들 이사들이 많지 않다. 공화당계 이사가 앞서 말한 월러와 미셸 보우먼 등 두 명뿐이다. 부의장 필립 제퍼슨은 민주당계다. 세계적인 금융통화이론가인 안토니오 파타스 인시아드대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요즘 트럼프 압박에 대해 Fed 내부의 반발이 거세다”고 전했다. 게다가 트럼프 공세에 파월이 버틸 법적 장치도 있다. 파월의 임기는 두 가지다. 의장 임기는 내년 5월에 끝나지만, 이사 임기는 2028년 1월 31일까지다. 파월이 트럼프 압박에 의장에서 물러나더라도 이사 자리는 지킬 수 있다.

또 Fed 법에 따르면 트럼프가 지명한 이사회 의장이 자동적으로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FOMC 의장이 되는 구조가 아니다. FOMC는 이사 7명과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기타 지역 준비은행 총재 4명 등 모두 12명으로 이뤄진다. 지금까지 관례대로라면 Fed 의장이 FOMC 의장을 맡는다. 부의장은 Fed 부의장이 아닌 뉴욕 준비은행 총재가 담당한다. 그런데 법규에 따르면 FOMC 의장은 멤버 12명의 ‘호선’에 의해 결정된다. 파타스 교수의 말대로라면 FOMC 멤버들이 트럼프가 뽑은 Fed 의장 대신 다른 사람을 의장으로 뽑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엔 Fed 의장에선 물러났지만, 이사 지위를 유지한 파월이 FOMC 의장이 될 수도 있다. Fed 이사회와 FOMC가 맞서는 모양새다. 두 조직을 따로 설계한 1930년대부터 우려되어 온 ‘지배구조 위기’다. 위기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이 의장을 ‘멍청이’ ‘얼간이’ 등으로 부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최악의 경우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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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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