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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도의 퍼스펙티브] 힘의 논리 앞세운 ‘트럼프 2.0’ 시대, 이란만의 문제 아니다

중앙일보

2025.06.2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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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참전으로 복잡해진 이스라엘-이란 전쟁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지난 13일 발발한 이란·이스라엘 전쟁에 미국이 참전했다. 미국은 지난 21일 B-2 스텔스 폭격기와 잠수함을 이용해 이란의 포르도·나탄즈·에스파한의 핵시설을 정밀 타격했다. 특히 지하 80~90m에 위치한 포르도 핵시설은 지하 60m를 관통하는 벙커버스터 12개를 투하해 파괴했다. 긴급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성공적으로 이란의 핵시설을 파괴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는 만일 이란이 반격하면 더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며 이제 평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란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도와 전쟁에 뛰어들면 중동 내 미군기지를 공격하겠다고 맞섰다. 하지만 미국은 그러한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역내 기지를 사용하지 않아 이란의 보복 선택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다만 이라크의 친이란 무장 조직이 미군 기지를 공격할 가능성은 크다.

미국의 이란 핵시설 타격으로 전쟁 양상 달라져…이란, 강력 보복 예고
지난 4월부터 미국·이란 협상 벌였지만 저농도 우라늄 농축 놓고 진통
이란 “원전용 3.67% 농축은 허용해야” vs 미 “이란 영토 안에선 안 돼”
규범보다 강자 우선주의 작동하는 ‘정글의 세계’… 생존 전략 고민해야

호르무즈 해협 봉쇄도 생각보다 어려운 선택지다. 이란·이라크 8년 전쟁 동안에도 봉쇄된 적이 없는 곳이다. 이란이 관장하기는 하지만 폐쇄할 경우 이곳을 통해 석유를 수출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웃국과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란의 원유 수출길도 막히기에 자해행위를 할 가능성은 작다. 다만 예전 우리 선박이 나포된 것처럼 통행을 어렵게 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이스라엘 목표는 이란 핵 무력화
미국이 폭격기로 이란 핵시설을 정밀 타격한 지난 2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여성이 이란 국기를 들고 미국에 항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미국의 이란 핵시설 타격은 이스라엘의 오랜 꿈인 이란 핵 무력화의 일환이다. 무력보다 대화를 선호한다고 공개적으로 여러 번 천명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논의 끝에 결국 이스라엘의 무장 공격을 용인한 결과 지난 13일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 시각으로 이날 오전 6시 30분 약 200대의 이스라엘 전투기와 함께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드론이 이란의 핵시설, 핵 과학자,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공습했다.

작전명 ‘일어서는 사자(Rising Lion)’는 유대인의 히브리성서(기독교의 구약성서) 네 번째 책인 민수기 23장 24절의 “보라, 암사자처럼 일어나고 수사자처럼 일어서는 백성을. 짐승을 잡아먹지 않고서는, 잡은 짐승의 피를 마시지 않고서는 눕지 않는다”에서 따온 말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15개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충분한 핵분열 물질을 가지고 있고, 최근 몇 달간 핵무기 조립을 위한 비밀 실험을 진행했으며 또 현재 수천 발의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이를 세 배로 늘릴 계획이라서 핵무기 없이도 이스라엘의 실존을 위협하는 존재이기에 공격한다”고 밝혔다.

이란 방공망 취약, 기습에 무기력
지난 21일 이스라엘 중심 도시 텔아비브에서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바라보며 이스라엘 경찰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UPI=연합뉴스]
이란은 지난 3월부터 이스라엘의 공격 기미를 눈치채고 준비하였다는 고위장성의 말이 무색하게도 기습공격에 무기력하게 당했다. 가뜩이나 방공망이 취약한 상태인데 현존 최고의 스텔스 전투기인 F-35에 영공을 내주고 이란은 속수무책이었다. 전쟁 발발 이튿날에는 자세를 추스르고 방어망을 작동해 나름대로 전과를 거두긴 했지만, 전쟁 내내 부실한 방공망은 이란의 발목을 잡았다.

이란은 미국 추산 2000~5000기의 탄도미사일로 이스라엘에 반격을 펴는 데는 크게 성공했지만, 이스라엘의 공습을 막고 국민과 주요 시설을 보호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방공망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스라엘의 최신형 전투기는 이란 상공을 동네 마실 다니듯 휘저었다. 그러나 이란의 폭격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대의 피해를 낳았다.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와 최대 항구도시 하이파 등 주요 도시가 이처럼 얻어맞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이란 핵 협상 두 달의 의미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이란이 핵무기 없이 위대하고 성공적인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이란과 검증 가능한 핵 평화 협정을 체결해 중동에서 성대한 축하 행사를 열자는 희망을 피력했다. 트럼프는 지난 3월 7일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에게 편지를 보내 이란이 두 달 안에 핵 프로그램을 해체하고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며 대리 세력(후티반군, 헤즈볼라, 이라크 민중동원군) 지원을 멈출 것을 요구했다. 만일 기간 내에 요구사항을 이행하면 미국은 제재를 해제하고 이란 고립을 끝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국이 군사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며 위협하고 나섰다.

예상보다 빠르게 지난 4월 12일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서 미국과 이란은 오만을 중재자로 삼아 간접적인 핵 협상을 시작했다. 저농도라도 우라늄 농축을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의 권리로 주장하는 이란이기에 미국이 농축 완전 중단을 요구하고 나왔으면 협상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 저농도 우라늄 농축에 유연한 태도를 보였기에 두 차례의 만남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3차 협상 직전부터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두고 허용과 금지로 의견이 엇갈리면서 협상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저농도 우라늄 농축이 협상 쟁점
난관 타개책으로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 연료인 3.67%의 저농축 우라늄이 필요한 나라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연료를 가져가는 안이 나왔다. 이란은 이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컨소시엄의 농축시설을 무인도라도 이란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67%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저농축 우라늄 수치로, 핵무기 제조에 사용하는 고농축 우라늄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의 연료로 쓰는 저농축 우라늄마저 미국은 고개를 저었다. 이란 땅에서 농축을 허용하면 결국 이란이 계속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과거 리비아가 했던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 관련 프로그램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란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다. 이스라엘은 더 나아가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이란의 핵 농축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해도 이스라엘이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스라엘은 협상에 얽매이지 않고 이란의 핵 시설을 파괴하겠다는 뜻이다.

6차 회담 앞두고 협상 깬 트럼프
이란과 미국은 협상 두 달이 지난 시점인 지난 15일 오만에서 제6차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회담을 앞두고 트럼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핵 협상 타결에 부정적이라고 하면서 이란이 협상 타결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동에서 필수 인력을 제외한 미군 가족과 외교관을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핵 합의를 이끌기 위해 미국이 군사적 압박책을 쓰는 것으로 보였지만 놀랍게도 압박을 가하는 주체는 미군이 아니라 이스라엘군이었다. 트럼프는 네타냐후에게 이란 핵시설 타격을 막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지체하지 않고 핵 협상을 시작한 지 61일째 되는 날 이란을 선제공격했다.

이스라엘은 포르도 지하 핵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벙커버스터를 미국에 계속 요구했다. 벙커버스터를 실어나를 B-2 스텔스 폭격기도 미국만 갖고 있기에 미국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층마저 이스라엘의 전쟁에 미국이 말려드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트럼프는 2주일이란 새로운 기한을 설정하면서 다음 달 초까지 공격을 잠시 미루는 듯 보였다. 지난 20일에는 미국과 사전에 조율한 유럽이 이란과 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미국과 핵 협상을 재개하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미국은 이란 핵시설을 공습했다.

이란 “그동안 외교적 노력 물거품”
협상을 깬 적 없는 이란으로서는 황당한 일이다. 아락치 이란 외교부 장관은 미국과 협상하고 있을 때는 이스라엘이, 유럽과 대화할 때는 미국이 이란의 외교적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란이 협상장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하지만, 협상장을 떠난 적 없는 이란이 어떻게 협상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냐고 반문한다.

북한과 달리 이란은 NPT 안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 있다. 따라서 문제가 있다면 IAEA의 규범에 따라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선제공격한 이스라엘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다를 바 없다. 미국의 공습 역시 예방적 선제공격을 정당화하는 전례를 남겨 향후 중국이 대만을 선제공격해도 비난할 여지가 없다.

국제사회의 규범보다 힘의 논리가 더 옳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지금 힘의 논리가 지고지선인 정글에 사는 셈이다. 강자 우선에다 낯선 미국의 모습만 보이는 ‘트럼프 2.0’의 국제정세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을 깊게 해야 할 때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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