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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논설위원이 간다] 봉준호의 추억 털어내고 ‘AI 미래도시’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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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3 08:24 2025.06.2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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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에서 AI 엑스포 연 화성특례시
김승현 논설위원
영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가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왔다. 아메카는 202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IT·가전제품 박람회인 CES에 처음 공개된 인간과 가장 닮은 로봇이다. 사람과 비슷한 표정과 손동작 등이 징그러울 정도로 비슷하다며 화제를 모았다. 한국 특급가수 정도의 대우를 받는 ‘글로벌 셀럽’ 아메카가 초대된 행사는 ‘마스(MARS·Mega city A.I. Revolution Summit) 2025’라는 이름의 엑스포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제조업체 가장 많아
서울에서 엑스포 열고 AI 미래도시 출사표
영화 ‘살인의 추억’ 트라우마 성장으로 극복
정책과 투자가 직주락 도시 선순환 만들어

“AI시대 선도하겠다” 자신감
정명근 화성특례시장이 지난 18~2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MARS 2025에서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화성특례시]
아메카가 대형 화면을 통해 이 행사의 시작을 알리고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손님을 맞았다. “여러분에게 화성특례시를 소개합니다. 지금부터 화성특례시 AI 엑스포가 시작됩니다. 함께 화성의 미래를 응원해주세요.”

아메카의 소개처럼 경기도 화성특례시는 이날 행사의 주최자이자 주인공이었다. 지방정부로는 처음으로 AI 엑스포를, 그것도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나름의 야심이 담긴 행사였기 때문이다. 정명근 화성특례시장은 개회사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컨벤션의 중심지에서 기초지방정부 최초로 MARS 2025를 개최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며 “지방정부가 단순히 중앙정부의 정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AI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의 주체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옛날의 화성이 아니다”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열린 행사는 화성시의 성장을 전국 단위에서 인정받는 의미가 있었다. 시 의회 일부 야당 의원이 비용과 장소를 문제 삼기도 했지만, 행사장에서 만난 시민과 시청 관계자들은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옛날의 화성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 서남부에 위치한 이 도시의 변화는 그만큼 드라마틱하다. 2001년 군에서 시로 승격될 때 인구는 21만명, 현재 인구는 약 105만 명이다. 2019년 80만, 2022년 90만을 돌파해 2023년 12월에 100만명을 달성해 올해 1월 1일부터 특례시로 지정됐다. 4년 만에 20만 명이 증가한 것이다. 전국의 기초자치단체 중 사업체 수 1위(12만여 개·2023년 기준)이고 제조업체와 제조업 종사자 수도 1위(2만6689개, 26만6142명)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할 때(2003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변화다. 당시 이 영화는 1980~90년대 경기도 화성군 일대에서 벌어진 연쇄 성폭행·살인사건(사망자 15명)을 모티브로 삼았다. 서울의 1.4배인 넓은 땅덩어리는 “치안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탄식을 불러왔다. 감독 봉준호와 배우 송강호는 대스타가 됐지만, 화성시엔 트라우마가 남았다.

전국적 행사 만들려고 코엑스 선택
그러나, 상황은 반전됐다. 지금은 경기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이 됐다. 서울보다 넓은 땅은 대기업의 생산기지, 젊은이들의 신도시가 됐다. 화성의 이미지가 우울한 추억에서 AI 미래도시로 바뀌어 각인되길 시민들은 바라고 있었다. 지난 19일 코엑스에서 만난 정 시장은 “‘살인의 추억’은 과거일 뿐이다. 지금은 주변의 자치단체가 부러워하는 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Q : 엑스포에서 화성의 성장을 자랑하는 듯하다.
A : “한편으로는 자랑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AI의 미래를 배우기 위한 자리다. 우리의 수준을 알리고 미래에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 알아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기업과 지자체는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Q : 서울에서 엑스포를 연 이유는.
A :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정부와 기업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배울 기회를 전국적인 규모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심도를 높여야 석학들이 와서 강의도 하고 기업과 공무원들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일 울산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에 참석하며 AI 강국으로의 드라이브를 걸면서 행사 관계자들은 더 고무됐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지금까지는 고속성장을 해왔는데, 지금은 깔딱 고개를 넘어가는 것 같다”면서 AI 시대를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화성시가 대통령과 ‘코드’를 맞춘 게 아니냐는 지적에 정 시장은 “지난해 7월부터 준비한 행사다. 누가 계엄이 선포될 줄 알았겠느냐”며 웃었다. 국가와 지자체 모두 AI 시대를 맞아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Q : 기초자치단체가 AI를 선도할 역량이 될까.
A : “화성시가 첨단 산업 도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조업체가 2만6680여 개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많다. 반도체 관련 기업 1700개, 바이오·화장품 회사가 3000여 개, 모빌리티 회사가 약 1000개다. 첨단 미래 전략 산업들이 몰려 있는 거다. 행정은 그런 산업 기반을 알리고 필요한 정보의 장을 더 깔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체가 많아지고 젊은 사람들이 막 들어오니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그렇게 안 할 수가 없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제조업체 2만6000개의 힘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라인 내 엔지니어의 모습. 삼성전자 제공
MARS 2025에는 화성시에 있는 여러 기업과 기관들이 참여했다. 로봇으로 제조 공정을 최적화하는 스마트팩토리 기술, 자율주행 로봇, 웨어러블 로봇, 대형무인기, AI CCTV, 치매 예방AI로봇, AI 기반 운행관리 솔루션 등이 224개 부스를 채웠다.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에 자동화 설비를 제공하는 기업도 많이 보였다. 화려하지 않아도 기업과 지자체는 물론, 시민의 일상에서도 점점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크고 작은 AI 기술들이다.


Q : 화성시가 급성장한 비결은.
A : “1992년 경기도청 근무를 시작으로 화성시 공무원, 화성 지역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성장 과정을 지켜봤다. 동탄이 개발돼 입주하던 초기엔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해 다른 도시들이 규제를 받고 화성은 성장관리권역으로 투자가 가능했던 것이 가장 큰 성장 요인이다. 국가 도시계획의 혜택을 본 것이다. 기업이 들어오고, 사람이 몰려오고, 택지 개발을 하고, 학교와 학원이 생기고, 이렇게 선순환이 된 거다.”


Q : 기업의 힘을 절감했겠다.
A : “그렇다. 기업이 떠나면 지자체 재정자립도가 떨어진다. 가까운 곳에서 자기가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있으면 도시는 순환이 되고 안정이 된다. 위성도시는 어디론가 흡수될 수밖에 없다. 화성은 재정자립도가 52%, 지역 고용률이 68%를 웃돈다. 고용률이 경기도에서 가장 높아 다른 지자체가 부러워한다.”


Q : 다른 지자체가 왜 부러워하나.
A : “가장 중요한 건 먹고사는 문제다. 우리나라 같은 산업구조에서는 제조업 일자리가 중요하다. 화성시민 60만 명 정도가 근로를 하고 그중 30% 이상이 제조업에서 일한다. 반도체나 자동차 회사가 잘 돼야 벤더사(협력사)들까지 잘 되고, 그 사람들이 음식점에 가서 자영업자들을 살린다. 제조업이 망가지면 3차 산업을 살릴 수 없다. 정부의 지원금 등이 일시적으로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연구 개발이 결합한 제조업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기업이 떠나고 아파트만 지은 지자체는 재정 자립도가 30%대로 떨어지더라. 직주락(職住樂·일 주거 여가)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기업이 있어야 한다.”


Q :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A : “이번 행사에 많이 와서 보고 가셨다. 개막식에서 화성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걸, 특례시답다는 걸 실감하셨다고 한다. ‘자랑스럽다’는 문자를 많이 받았다. 최근엔 화성에서 유명 가수를 초청한 콘서트도 크게 했다. 지역의 조그만 동네라는 생각이 점점 바뀌고 있다.”

“CES급 AI엑스포 화성에서 가능”

Q : 성장의 성과를 누리는 건가.
A : “누린다기보다는 더 넓은 세계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 공무원들에게도 기회가 있으면 해외나 서울에 많이 다닐 수 있게 노력한다. 저도 경기도에서 일할 때 중국 유학을 다녀왔다. 외부와 교류가 전혀 없이 100만 명 넘는 다양한 시민,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하기는 쉽지 않다. 공무원들도 견문을 더 넓혀야 한다.”


Q : AI를 이용한 행정도 소개했는데.
A : “초등학교 앞에서 신호등에 맞춰 차단기가 내려오는 시스템, 도로의 포트홀을 버스와 택시에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해 통제센터에서 확인하고 바로 조치하는 시스템 등이 있다. 복지관에는 재활 로봇이 어르신의 보행을 돕는다.”

정 시장은 “MARS 2025를 해보고 나니까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중국이나 유럽의 도시에서 세계적인 산업박람회가 열리는 것처럼 화성에서도 세계적인 규모의 AI 박람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정 시장은 “화성시가 AI를 선점하면 10년 뒤에는 CES 급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겠나. 지자체의 그런 노력이 중앙정부에도 자극이 될 것이다. 동탄역 앞에 제2의 코엑스를 만드는 컨벤션 사업도 추진 중이니 그런 미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승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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