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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의 시선] 리더는 지지층 너머를 본다

중앙일보

2025.06.2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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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편집국장 대리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중도보수층을 겨냥한 ‘우클릭’ 전략으로 효과를 봤다. 민주당이 전략적으로 우클릭을 내걸어 승리한 전례는 2011년 4·27 재보선이었다. 당시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패배를 각오하고 보수 텃밭인 분당에 출마했지만, ‘중산층 손학규’를 내세워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 정치에서 외연 확장은 이론에선 매력적이지만, 현실적으론 먹히기 어렵다. 선거 전략의 정석은 당내 경선에서 ‘집토끼’를 다지고 본선에서 ‘산토끼’를 잡는 것이지만, 진영 대립이 극명한 한국 정치에서는 산토끼 전략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보다는 지지층의 정서를 자극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선거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중도보수를 흡수하려는 확장형 선거로 승기를 굳힌 건 그간의 양상과는 크게 다르다. 민주당이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외연 확장에 나선 드문 사례였다.

이 대통령 전례없는 안정적 집권
여당 단일대오, 야당은 공백 상태
지지층 넘어 확장의 리더십 기회

14년 전 분당을 보선도 보수적 지역 정서에 맞춰 선거전을 조율했다. 당시 손학규 캠프는 후보 명함에서 ‘민주당’ 당명을 삭제했고, 거리 유세에서도 민주당 당직자들을 후보 곁에 세우지 않고 멀리서 뒤따르게 했다. 물밑 여론전에선 ‘민주당 손 대표’만 아니라 ‘한나라당 손 지사’ 시절의 경기도 기업 유치 실적까지 활용했다. 분당 중산층에 맞춘 촘촘한 선거전을 기획했던 당시의 젊은 참모 중 일부는 현재 이재명 정부의 대통령실에 포진해 있다.

총선과 대선은 정치적 무게에서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민주당의 중도보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14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유리한 여건에서 집권했다. 손 전 대표는 분당 승리 직후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싸고 당내 강경파와 진보 정당의 반발에 직면하며, 민주당 정체성에 충실한지를 놓고 견제를 받았다. 반면 이 대통령의 당정은 긍정적으로 보면 단일대오를 형성했다. 지난해 총선을 통해 당내 비명계를 정리하면서 여당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로 대오를 갖췄다. 내부에서 반기를 들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외부의 도전도 미미하다. 14년 전 150석을 넘겼던 한나라당은 이제 100석 규모의 국민의힘으로 쪼그라들었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대선에서 중도보수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민의힘의 부재가 한몫했다. 국민의힘은 계엄 논란과 탄핵 찬반에 휘말리며 자중지란에 빠졌고, 대선 막판까지 보수를 아우르는 후보를 내지 못했다. 그 정치적 공백을 이 대통령이 일부 흡수한 셈이다. 대선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반성도 없고 결기도 없이 지리멸렬하다. 향후 상당 기간 이 대통령을 향한 뚜렷한 정치적 도전은 가시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확장 전략에 성공하고 정치적 안정성까지 확보한 이재명 정부가 참고할 수 있는 사례는 노무현 정부다. 노 전 대통령은 정권의 안정성에서 취약했고, 무엇보다 대연정을 시도하다 지지층의 이탈을 불렀다.

그럼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FTA와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같은 굵직한 자산을 남겼다. 지지층은 반대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소신을 갖고 추진했던 한·미 FTA는 이후 한국의 대외 교역을 지탱하는 축으로 역할했다. 평택 기지 이전은 2006년 죽창까지 등장한 ‘대추리 시위’를 겪으며 노무현 정부를 힘들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오늘날엔 미군 철수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최신식 대규모 시설인 캠프 험프리스는 미국 안팎 어디에서도 대체지를 찾기 어렵다. 미국 대통령 방한 때마다 한국의 안보 기여를 보여주는 최적의 코스가 됐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이념적 정체성에 충성하기보다는 실용에 입각한 정책을 구사하겠다고 알리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기조를 천명했고, 한·일 관계에서도 반일 정서를 의식하지 않고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관건은 앞으로 실용 노선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십은 지지층에 기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때론 지지층이 불편해하는 결정을 내리면서도 설득을 통해 지지층 너머의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에 있다. 지지층의 환호에만 머무르면, 이는 리더십이 아니라 팔로어십이다. 포퓰리즘의 유혹을 피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이 ‘전국민 당선축하금’이라는 관례를 도입한 대통령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민주당의 외연을 넓혀 장기 집권의 기틀을 마련한 지도자로 평가받을지는 그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





채병건([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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