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관련 노조법 개정을 강조하고, 노동계 출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내정되면서다. 국정위와 이재명 정부는 법안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전문가들은 실효성이 낮고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 후보자는 24일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한 첫 출근길에서 ‘노란봉투법’·주 4.5일제·정년 연장 등 주요 노동 현안에 대해 “저출생·고령화, 디지털 전환 등 대전환기에 반드시 검토해야 할 의제”라며 “노사정이 공동의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법안의 연내 재입법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사용자 범위 확대. 노동쟁의 범위 확대, 불법쟁의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제한 등 세 가지다.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사용자성 확대를 담은 노조법 제2조 개정안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하청 노동자는 기존처럼 하청 사업주가 아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권’을 가진 원청 사업주와도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다만 정치권에 따르면 과거 거부권이 행사된 노란봉투법 법안 그대로가 아니라, 경영계의 우려 등을 반영해 일부 조항을 수정한 새로운 형태의 법안 입법이 준비되고 있다.
경영계는 사용자 범위가 확대되면 원청이 모든 하청과의 법적 책임을 떠안게 될 걸 우려한다. 경영계 관계자는 “사용자 범위가 확대될 경우 원청 사업주는 수십, 수백 개의 협력업체와 단체교섭을 해야 할 수 있고, 단체교섭이 결렬돼 수많은 파업이 발생하면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는 붕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단적인 예를 생각해보면 수백 개의 공공기관의 노동조합도 임금 인상을 위해 직접 기획재정부와 교섭을 하려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 측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의 원인인 하청 노동자의 저임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원청과의 교섭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이 통과되더라도 하청 노동자의 근로 여건이 곧바로 개선되기는 어렵고, 오히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더라도 하청 노동자가 바로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근로기준법 적용을 두고 ‘근로자성’을 법원에서 다퉜던 것처럼,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진 ‘진짜 사용자’가 누구인지 법원에서 소송으로 가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까지 이어질 경우 수년이 넘게 걸리고, 매번 소송을 통해 ‘진짜 사용자’를 가리는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
이번 대선 공약 노동 부문에 참여한 정길채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도 “노란봉투법만 통과돼서는 개인적으로 ‘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뭐가 바뀔 것인가. 사용자들은 법원으로 가 소송을 할 것이고, 그럼 결국은 변호사들 돈 벌어주는 것 외에 뭐가 남지’란 고민이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노란봉투법 도입으로 인해 기업들이 오히려 회피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익명을 요청한 한 노동 전문가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기업들은 일단 하청 구조를 전부 정리하고 완전 도급 형태로 전환할 가능성도 크다”며 “결과적으로 노사 관계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공장을 아예 해외로 이전하거나, 로봇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화를 가속화하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고 짚었다.
결국 노조법 2조 개정보다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오성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란봉투법 대신 중앙노동위원회에 산업별·지역별 초기업별 교섭단위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이는 법으로 사용자 범위를 일괄 확대하기보다는, 각 기업의 여건에 맞춰 산업별·지역별 단위에서 교섭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은 “노조법 2조 개정은 하청 노동자에게 자칫 ‘희망고문’만 될 수 있다”며 “경영계가 우려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하청 단가 현실화, 초기업(같은 업종의 여러 노조를 묶어서 하는) 교섭 수용, 원·하청이 참여하는 국가 차원의 이중구조개선위원회 구성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