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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천적과 화해하기

중앙일보

2025.06.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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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이 되니 스스로를 탓할 일이 많아졌다. 전엔 ‘내 기사, 왜 이리 재미없지?’가 주요 자책 포인트였다면, 요즘은 ‘회의시간에 왜 조리 있게 말을 못할까’, ‘카리스마가 부족한 건 아닌지’, ‘왜 이렇게 살이 찌는가’(으응?)까지 맘에 안 드는 일 투성이다. 가끔은 내가 빠진 부서원들만의 단톡방에선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부장 칭찬도 하나쯤 있으려나…. 음, 상상을 말자.

드라마 ‘미지의 서울’(사진) 주인공인 서른 살 미지와 미래는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를 엿들을 기회를 얻었다. 둘은 엄마도 구별 못 할 정도로 꼭 닮은 쌍둥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사의 엘리트 사원이지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좀비처럼 살고 있는 언니 미래를 구하기 위해 고향에서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던 동생 미지가 ‘인생 체인지’를 제안한다.

부상으로 육상 선수의 꿈을 접은 미지는 겉으론 밝지만 스스로를 “혼자 불행한 것도 모자라, 주변인들까지 망치는” 존재로 가혹하게 몰아세운다. 하지만 타인이 되어보니 여전히 자신을 믿고, 높이 평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왜 나는 나를 지켜야 할 순간에 스스로를 공격하는 걸까? 남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의 가장 큰 천적은 나라는 것.”

완벽해 보였던 타인들의 삶에도 저마다의 버거운 숙제와 고통이 있다. 무거워 견딜 수 없는 나의 짐 역시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니 남과 비교해 나를 깎아내리기 이전에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드라마는 설득력 있게 전한다. 맞아. 카리스마 따위 없으면 어때! 한데, 이러다 나한테만 한없이 너그러운 꼰대가 되는 건 아닐까?…역시 ‘천적과 화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영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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