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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주 4.5일제 미리보기

중앙일보

2025.06.2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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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산업부 기자
선한 의도, 하지만 나쁜 결과. 정책 실패를 논할 때 종종 인용하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경고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주 4.5일 근무제는 어떨까. 2023년 일찌감치 주 4.5일제를 도입한 중소기업 대표 신 모(55)씨의 체험기를 들어봤다.

〈기〉 코로나19가 유행한 시절 전 임직원 42명이 주 2일 이상 재택근무를 했다. 회사 실적이 괜찮았다. 집중해 일하면 짧은 시간에도 많은 성과를 낸다고 믿었다. 능력 있는 개발자를 붙잡아두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래서 전격 도입했다. 금요일 오전까지만 일하고 퇴근하는 주 4.5일제.

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달 1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주 4.5일제 도입 등을 포함한 정책 협약을 맺고 있다. 김성룡 기자
〈승〉 시작한 지 2주쯤 지났을까. 한 직원이 “일이 많아 금요일 오후 ‘초과 근무’를 했는데 추가 보상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차 싶었다. 취지를 다시 공지했다. 5일 동안 할 일을 4.5일 만에 끝낸 직원만 금요일 오후에 퇴근할 수 있다고.

〈전1〉 한두 달 뒤부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불거졌다. 금요일 오전 반차(半次)를 내고 하루를 통으로 쉬는 문화가 퍼졌다. 1년(52주) 내내 연차(평균 20일 안팎)를 반차로 쪼개 쓴다면 40주가량을 주 4일 근무하는 셈이다. 생산성은 그대로인데 주 4일 근무하니 회사가 제대로 안 돌아갔다. 금요일 쉬려면 반차 대신 하루 연차를 쓰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전2〉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든 근무 시간에 적응해 집중하는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 직원은 일이 많다면서도 금요일 오후면 바람같이 회사를 떠났다. 일은 그대로인데 누군가 0.5일 빠질 경우 빈자리를 다른 누군가 남아서 메워야 했다. 어느덧 금요일 오후엔 매번 같은 인력만 남아 일하고 있었다. 책임감·애사심이 뛰어난 직원일수록 주 4.5일제의 피해자가 됐다.

〈결〉 개인별 성과부터 명확히 측정해 보상을 차별화하기로 했다. 시간당 생산량·불량률 같은 지표가 명확한 제조업이 아닌 정보기술(IT) 회사라 쉽지 않았다. 결국 임직원에게 양해를 구한 뒤 지난해부터 ‘주 4.75일제’로 바꿨다. 금요일 오후 2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 노동조합 파업에 대해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모두 재계가 꺼리는 이 대통령의 공약이다. 하지만 기업인이 체감상 가장 우려하는 건 주 4.5일제다. 대선 기간 근로자 표를 노린 공약이었으리라 믿는다. 득실 다시 따져보는 ‘실용주의’ 기대한다.





김기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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