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방위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서 보듯 전통적인 안보 개념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국경을 넘지 않고도 타격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은 이제 핵무기·미사일·무인기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대칭 전력의 핵심이 됐다. 북한은 이미 사이버를 핵·미사일과 함께 ‘3대 전략 무기’로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 분야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최근 SK텔레콤 해킹 사건은 대한민국의 국가 기반 플랫폼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금이야말로 사이버안보의 체질을 근본부터 바꿔야 할 결정적 분기점이다.
전방위로 확산하는 사이버 위협
유기적인 통합 대응체계 미비해
사이버안보청 설립, 병과 신설을
첫째, 전방위로 확산하는 사이버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사이버 위협은 어느 때보다 복합적이고 정교하다. 북한은 민간과 국방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해킹 시도를 감행하며, 랜섬웨어를 통해 직접적인 금전 탈취와 시스템 마비를 동시에 추구한다. 반면 중국은 제한 없는 전쟁, 즉 초한전(超限戰) 전략 차원에서 정보·심리·기술·외교·언론·자원·무역 등 24가지 전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위협은 국방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금융·에너지·의료 등 민간 인프라가 통째로 공격받을 수 있다. 이란·러시아·북한 등은 이미 사이버 부대를 외교적·군사적 수단으로 쓰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민간·공공·국방을 나누어 대응하다 보니 유기적인 통합 대응 체계가 미비하다. 민간과 군을 동시에 겨누는 위협 앞에서 기관별로 분리된 대응 구조는 한계가 뻔하다.
둘째, 사이버안보 거버넌스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현행 사이버안보 거버넌스는 여전히 분산적이고 통합성이 부족한 구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행정안전부·국방부와 정보기관 등 여러 기관이 각자의 영역에서 대응하지만, 이를 종합적으로 조율하는 상위 컨트롤타워의 실질적 기능은 미흡하다. 형식상 실무 조정체계는 있지만, 사이버 위협이 발생했을 때 신속한 정보 공유나 유기적 공동 대응이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특히 정보기관이 대응의 중심에 서 있는 현행 구조는 기술적 역량이나 정보 수집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민주적 통제와 민간 협력 측면에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런 우려는 ‘사이버안보 기본법’의 제정이 수년째 지연되는 배경 중 하나다. 국방 분야도 마찬가지다. 사이버전이 명백히 군사작전의 일부인데도 사이버군이나 전문 병과는 여전히 창설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점점 정교해지는 위협에 대응할 역량을 집중하기 어렵다.
셋째,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 개편과 전략적 투자다. 먼저 ‘사이버 안보청’ 신설이 필요하다. 이 기관이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갖고, 민간·공공·국방을 아우르는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 보안·인프라 보안국(CISA)’처럼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조직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이버안보기본법’도 제정해야 한다. 법 제정을 통해 국가 사이버안보의 기본 원칙과 대응 체계, 각 부처의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고 기관들의 협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국방 분야에서는 사이버군 또는 전문 병과 창설이 시급하다. 사이버전이 실전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은 러·우 전쟁에서도 입증됐다. 아울러 인공지능(AI)·드론·우주 무기 등 신기술을 활용할 경우 이에 대한 보안 기준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 예산 확대와 리더십 강화도 필요하다. 각 부처 고위 인사들이 사이버안보를 직접 챙기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새 정부가 인사·정책 발표 때 사이버 전문가를 꼭 포함하고 고려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사이버안보는 정보기관이나 기술 부서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 운영 플랫폼을 지키는 국가 생존 전략이다. 새 정부가 정책의 최우선 어젠다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지금이야말로 사이버안보청 신설, 사이버안보기본법 제정, 국방 분야 사이버군 창설 등 구조 개혁을 결단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이를 통해 대응 중심에서 예방과 통제 중심으로 틀을 대전환할 때다. 절체절명의 분기점에서 머뭇거린다면, 다음 사이버 공격엔 우리가 준비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