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지난 19일이다. 일본 프로야구가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한 매체가 전한 ‘단독 보도’ 탓이다.
뉴스가 취재된 곳은 사이타마 경찰서였다. 온라인 카지노에 연관된 혐의로 세이부 라이온즈 선수 4명과 구단 직원 1명이 검찰에 송치됐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현역 프로야구 선수의 불법 도박 혐의를 다룰 재판 절차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이후 많은 미디어가 이를 받아썼다. SNS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칫 하면 리그가 휘청거릴 일이다. 집단적인 도박 스캔들이다.
닷새가 지난 어제(24일) 일이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세이부 홀딩스의 주주총회가 열렸다. 여기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주주 한 명이 이의제기를 했고, 오쿠무라 쓰요시 구단 사장이 직접 나서 해명해야 했다.
물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건은 아니다. 이미 2월부터 시끌시끌했다. 온라인 카지노에 NPB 소속 선수와 구단 관계자 여럿이 연관됐다는 보도가 출발이었다.
이번에 알려진 세이부의 5명도 그중의 일부다. 단, 다른 점이 있다. 당시는 인적 사항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선수 4명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다. 도노사키 슈타(32·내야수), 쓰게 세나(28·포수) 고다마 료스케(26·내야수) 하세가와 신야(23·외야수) 등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신상이 나왔다. 구단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징계는 미온적이다. 벌금 약간으로 끝내려는 눈치다.
경찰발(發) 기사가 전해진 당일(19일)이다. 문제의 선수들은 버젓이 게임에 출전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다. 도박 얘기는 쑥 빠진다. 그냥 열심히 치고, 달리고 있다. (4명 중 3명은 1군의 주전급 야수들이다. 포수 쓰게 세나만 2군에 머물고 있다.)
NHK 뉴스화면
구단의 태도를 보면 의도가 명백하다. 처벌보다는 보호해 주겠다. 그런 의지가 강하다는 느낌이다. 발표된 해명도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본인들은) 위법성을 몰랐다고 한다. (나중에 문제가 되자) 잘못됐다는 점을 알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구단이 부과한 제재금도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향후 사법 당국의 판단을 주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적절한 대응을 해 나갈 것이다.’
이런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건 초기부터 일관된 반응이다.
온라인 카지노 사태의 시작은 지난 2월이다. 오릭스 버팔로즈의 투수가 처음 적발됐다. 당시는 이름도 나왔다. 야마오카 다이스케(30)였다. 프리미어 대회 때 대표팀에도 합류한 스타급이다.
이후 속보가 이어졌다. 야마오카 혼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여러 명이 연루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다급해진 NPB와 각 구단은 서둘러 자진 신고를 받기로 했다. 그 결과 16명이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이라면 리그가 발칵 뒤집어질 일이다. 그런데 수습책이 뜻밖이다. 제재안이라고 내놓은 게 뜨뜻미지근한 ‘조치’뿐이다. 대충 솜방망이 처벌로 끝내겠다는 의도가 뻔하다.
발표에는 16명이라는 숫자만 나온다. 누가 해당되는지, 어느 구단에 몇 명이 있는지…. 그야말로 깜깜이 명단이다.
당연히 출장 정지 같은 징계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랬다가 누군지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제재금만 전해졌다. 역시 구체적인 것은 없다. 그냥 ‘최대 300만 엔(약 2800만 원)’이라고 어물쩍 넘어간다. 16명에 부과된 총액은 1020만 엔(약 9600만 원)으로 발표됐다.
처음 적발된 오릭스 투수 야마오카 다이스케. OSEN DB
훗날 언론 보도를 통해 몇몇이 드러났다. 지난 5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명(외야수 오코에 루이, 내야수 마스다 다이키)의 이름이 밝혀졌다. 그때도 비슷한 해명이다.
‘위법인 걸 몰랐다. 깊이 반성한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NPB는 치욕적인 역사를 안고 있다. 1969년에 발생한 검은 안개 사건이다. 폭력 조직이 연루된 승부 조작 스캔들이다.
물론 이번 사건을 같은 맥락에서 다루기는 어렵다. 승부 조작과는 엄연히 죄질이 다르다.
그러나 온라인 카지노는 최근 일본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나 유명인이 가담한 것으로 밝혀져 여론의 지탄을 받는 상황이다. 유독 야구계만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대만 프로야구(CPBL)는 작년 8월 비슷한 일을 겪었다. 현역 선수 1명이 도박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고, 이후 소속 팀에서 퇴출당했다. 또 다른 3명은 포커 게임하는 사진이 유출됐다. 이들에게는 벌금 외에도 5~7경기씩 출전 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다른 얘기할 것도 없다. 2015년 KBO의 원정 도박 사건 때다. 삼성 라이온즈는 해당 3명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결국 정규 시즌 1위의 강력함을 잃었다. 3위 두산 베어스에 패해 '한국시리즈 4연패'에서 멈춰야 했다.
3명 외에 또 1명이 있다. 한신 타이거스에서 뛰던 오승환이다. 두 시즌(2014~2015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재계약을 논의 중이었다. 한신은 잔류시킬 의사가 분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변했다. 갑자기 불거진 이 사건 때문이다. 당시 유력한 일본 매체의 보도 내용이다.
‘한신의 고야 에이치 구단 본부장(단장)은 한국에서 불법 도박 관여를 의심하는 보도가 있었던 오승환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다. (중략) 고야 본부장은 ‘사실이라면 (재계약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며칠 후 한신은 보류 선수 명단에서 오승환을 제외시켰다. 결국 파이널 보스는 세인트루이스로 떠나야 했다.
그렇게 칼 같고, 깔끔함을 강조하던 NPB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너그럽고, 자상한 모습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