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멈췄지만, 고민은 이어진다. ‘12일 전쟁’ 후 24일(현지시간) 가까스로 휴전에 돌입한 이스라엘과 이란 얘기다. 이란의 핵·미사일 전력에 큰 타격을 입힌 이스라엘이지만, 장기적으로 이란 핵무기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안게 됐다. 영토에 큰 피해를 본 이란도 정치적 격변 가능성이 커졌다.
전쟁을 주도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결과를 “역사적인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이란의 핵무기화 시도를 저지하고 2만발의 탄도 미사일을 파괴했다. 두 가지 (이스라엘의) 실존적 위협을 제거했다”고 말했다. 이란의 핵무기 제조 능력과 미사일 전력이 사실상 파괴됐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이란의 핵 야망이 이대로 끝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미국 국방정보국(DIA)은 이번 공격이 이란의 핵 개발을 몇 개월 정도 지연했을 뿐이라고 본다. 오히려 포르도 핵시설에 있던 408㎏의 60% 농축 우라늄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를 벗어나 행방이 묘연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일정 수준 농축이 진행된 우라늄의 농축도를 높이는 건 쉽다”며 “영토를 공격당한 이란 정권이 자위 차원에서 핵무기화를 필사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제임스 액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핵정책 프로그램 공동책임자는 “이란이 IAEA 감시망 밖에 폭탄 여러 대 분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보관하게 됐다면, 이번 전쟁은 핵 확산 방지 측면에서 재앙”이라고 평가했다. 상당수를 파괴했다지만 숨겨져 있는 이란의 미사일 전력도 무시할 수 없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복원하려고 시도한다면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이란은 핵무기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징후가 나타나면 또 이란을 타격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공세를 반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쟁 비용은 이스라엘 경제에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 공군은 12일 동안 약 1200회의 임무를 수행하며 값비싼 제트 연료와 유도 무기를 소비했다”며 “경제학자들은 이런 규모의 작전을 1년간 지속한다면 이스라엘 국내총생산(GDP)의 20%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GDP의 약 10%를 쓴 것으로 추산하는 가자지구 전쟁도 끝나지 않았다. 국내 반대를 무릅쓰고 이란 공격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 도와줄지도 미지수다.
그렇다고 온건 협상 모드로 전환하는 것도 네타냐후 총리가 선택하기 쉽지 않다. 가자지구의 완전점령, 이란의 정권교체 등을 주장하는 극우 연정 세력의 눈치를 봐야 해서다. 우라늄 농축 등 이란이 반격에 나설 경우 네타냐후 총리가 정치적 생존을 위해 또다시 전쟁 무리수를 둘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자신감이 생긴 네타냐후 총리가 정계 개편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산하 연구기관 아감랩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이란 공습에 유대인의 83%, 전체 이스라엘 인구의 70%가 찬성했다. 로이터통신은 “오랜 기간 정권 상실 위협에 처한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은 이란 공습 이후 지지율 반등 조짐을 보인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리쿠드당 내부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지지율 상승세를 틈타 조기 총선으로 연정 없는 과반의석 확보를 노릴 수 있다고 본다”며 “정계 개편에 성공할 경우 네타냐후 정권은 기존 극우주의에서 실용주의적 정책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주요 군 장성과 핵 과학자를 잃고 민간인 피해마저 컸던 이란 역시 큰 변화에 직면하게 될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 정권은 무너지지 않더라도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며 “성직자 계급의 권력이 쇠퇴하고 이를 혁명수비대 등 군부가 이를 이어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