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중앙일보

광고닫기

[김성재의 마켓 나우] 유가와 물가, 50년 반복된 전쟁의 경제학

중앙일보

2025.06.25 08:0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
1973년 10월 6일 유대교 속죄일 욤 키푸르에 맞춰 이집트군이 이스라엘을 전격 침공했다. 군 출신인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기습 전략이 맞아떨어져 개전 초반 이스라엘군은 심각한 위기에 내몰렸다.

‘철의 여인’ 골다 메이어 총리는 이스라엘이 비공식적으로 보유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는 핵무기 사용이 제3차 세계대전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는 미국 정부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적 신호였다.

메이어 총리는 미국에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그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 보좌관에게 지시해 22억 달러의 무기와 군수물자를 보급하도록 조치했다. 미 공군은 2만t이 넘는 탱크·대포·탄약 등을 이스라엘로 공수했다. 지원 대상에는 고성능 기종인 F-4E 팬텀과 스카이호크 전투기 80여 대가 포함됐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돕고 나서자 아랍 국가들은 격분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서방진영에 석유 금수 조치를 단행했다. 수개월 만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뛰었다. 오일쇼크로 1974년 미국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12% 급등했고 미국은 역성장했다.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유가는 안정되었고 물가 상승도 억제되었다. 1976년 인플레이션은 전년 대비 5%로 하락했다. 그해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사상 최대인 737억 달러로 증가해 GDP의 4%에 육박했다.

1960년대 이후 누적된 재정적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했다. 설상가상으로 레바논 내전과 시리아에서 일어난 무슬림 봉기로 중동 정세가 불안해졌다. 수요와 공급 양면의 압박으로 미국 물가는 1977년 전년 대비 6.7% 상승했고 1978년에는 9% 올랐다.

중동 불안은 1979년 정점에 이르렀다.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친미 정권이 붕괴했다. 1980년에는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해 새로운 전쟁이 터졌다. 제2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배럴당 35달러로 치솟자 미국 인플레이션은 15%로 악화했다.

21세기에도 전쟁으로 인한 물가 불안은 되풀이된다. 2019년 1%대였던 미국 인플레이션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전년 대비 9.1%까지 올랐다. 최근에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고강도 긴축으로 인플레이션은 2.4%로 안정되었다.

물가가 안정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에 금리를 낮추라고 다그치고 있다. 관세를 올리고 이란 핵시설 폭격을 지시했다. 경제정책의 효과는 수년에 걸쳐 나타난다. 중동 정세 불안과 방만한 정책이 지속되면 1970년대의 두 자릿수 물가 상승이 반복될 수도 있다. 전쟁은 끝나도, 그 경제학은 끝나지 않는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