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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의 사람사진] 고은정의 ‘책 먹는 부엌’

중앙일보

2025.06.2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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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익는 지리산에 글 소리

권혁재의 사람사진/ 음식문화 운동가 고은정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에 ‘맛있는 부엌'이 있다.
이곳 주인장인 고은정 선생은 음식문화 운동가를 자처한다.
고 선생은 제철 음식 학교, 약선음식 학교, 장 학교, 김장 학교를 열어
우리 음식 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기에 그렇다.

2006년 남원으로 온 고은정 선생은 '맛있는 부엌’에서 삼시세끼 집밥 수업을 시작했다. 반찬 필요없이 밥 자체만으로 보약이 되는 한 그릇 밥 100가지를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그는 요즘 매달 한 번‘맛있는 부엌’에서 ‘책 먹는 부엌’을 열고 있다.
대체 책 먹는 부엌은 뭘까?

“여기에 11년째 오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한 곳에 한 달에 한 번씩, 한 10년 오면 뭘 배울 게 있겠어요.
그래서 한 5년쯤부터는 오지 말랬는데도 계속 오더라고요.
어찌어찌 지어 짜내서 한 달에 한 번씩 수업을 해왔죠.
제철 음식 2년, 시의적절 약선 2년, 생애주기 약선 1년,
그다음엔 한의사분과 함께 개인 맞춤 음식 수업을 했죠.
이젠 뭘 하지 하고 고민하다가 나온 게 책이에요.”

‘맛있는 부엌’은 읽은 책에 언급된 음식을 점심으로 먹는 게 원칙이다. 이를테면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밥 먹다가, 울컥』을 쓴 박찬일 셰프가 왔을 땐, 병어 철이었고 마침 책에 병어에 대한 얘기가 있어 병어조림이 주 음식, 『커피집』『커피 과학』『커피 세계사』 등을 번역한 윤선해 작가가 왔을 땐 독특한 향이 있는 봄나물과 멍게 비빔밥이 주 음식이었다.

이는 한 달에 한 번 책 저자를 불러 강연을 하고,
그 책에 관련된 음식을 만들어 점심으로 나누는 수업이었다.

그가 이렇게 ‘책 먹는 부엌’을 이어온 게 올해로 3년 차다.
3년을 이어온 데는 꼭 필요한 소양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유명한 셰프가 아니면 요리하는 분들이 인정을 잘 못 받잖아요.
주방 노동자, 홀 노동자, 손에 물 묻히고 일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죠.
이유 중의 하나가 이걸 하나의 기술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책을 통해 인문학 소양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고 선생은 전국 오일장에 다니며 우리나라 제철 식재료를 살피고,
나아가 제철 식재료 도감을 만들고자 하는 꿈도 버무리고 있다.

“우리나라 식재료가 서양 것에 밀려 소외당하고, 도태당하고 있어요.
그러니 식재료 도감을 만들어 우리 음식의 위기를 지키고 싶은 거죠.”

고은정 선생은 장 만드는 ‘비법이 따로 없는 게 비법’이라고 한다. 소금과 메주만 있으면 되니 라면 끓이기보다 쉽다고 했다.

라면 끓이기보다 쉬운 우리 장 만들기마저도 외면받는 현실이기에
고 선생의 부엌은 늘 우리 음식 문화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게다.





권혁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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