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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화의 마켓&마케팅] 직원이 일 즐기는 게 경쟁력…한국인 17%는 일할 때 분노 느껴

중앙일보

2025.06.2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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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자신이 직접 제작한 제품에 애정을 느끼고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심리적 현상을 이케아 효과(IKEA effect)라 한다. 손수 만든 책장이나 곰 인형, 밀키트 식사 등이 숙련자가 만든 제품보다 더 뛰어난 품질을 지닌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케아 효과를 최초로 소개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노턴(Michael Norton) 교수는 자신의 수고가 더해진 제품은 객관적 평가가 어려운 애착의 대상이 되어 더 큰 만족감과 소유감을 준다고 설명한다.

‘생산의 즐거움’이 고객평가 높여
일 자체의 즐거움에도 관심 필요
정서 담은 노동, AI가 대체 못해

페북 광고 클릭률 40% 높인 비결
동영상으로 자기 업무를 소개하는 사우스웨스트항공 직원들. [사진 각 기업]
최근 노스웨스턴대학의 제이콥 티니(Jacob Teeny) 교수팀이 발표한 ‘생산의 즐거움(Production Enjoyment)’에 관한 연구도 흥미롭다. 제품 또는 서비스 생산의 즐거움이 소비자 반응과 가격 수용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한 연구다. 검색엔진 관리 전문가가 페이스북 광고에서 “저는 경험이 많아요”보다 “저는 이 일이 정말 즐거워요”라고 표현했을 때 광고 클릭률이 40% 이상 높았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배관공이 “파이프 수리를 누구보다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광고보다 더 믿을 수 있고 높은 비용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평가됐다. 이외에 바텐더, 반려동물 미용사 등 다양한 직군에서 생산의 즐거움을 표현하면 소비자가 기대하는 품질과 수용 가능한 가격 수준이 높아졌다.

즐거움은 구매자뿐 아니라 생산자 본인의 가격 책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프리랜서 플랫폼 업워크(Upwork)에서 서비스 제공자에게 난이도가 유사한 작업 중 즐거운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선택하도록 한 후, 해당 작업에 대한 최저 수용가격을 제시하도록 했다. 그러자 즐거움을 느끼는 작업은 평균 시급보다 낮은 가격에도 수락할 의향이 있고, 즐겁지 않은 업무는 평균보다 더 높은 수준의 금액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로고 디자인을 좋아하는 경우 평균 비용이 30달러지만 25달러에도 일하겠다고 응답했고, 보고서 요약을 즐기지 않는 프리랜서는 평균 시급인 30달러보다 비싼 33달러를 요구했다.

트레이더조 직원들. [사진 각 기업]
즉 생산의 즐거움이 소비자와 제공자에게 발휘하는 효과는 비대칭적이다. 생산자가 일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정보는 소비자에게 더 나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기대하게 하고 더 높은 가격을 기꺼이 부담하도록 한다. 이는 흥미를 느끼며 집중한 작업일수록 결과물의 완성도가 향상한다는 몰입(flow)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한편 생산자는 작업 과정에서 경험한 즐거움 자체가 내재적 보상이 되어 금전적 보상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아지게 된다.

티니 교수는 생산의 즐거움 효과가 현실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제품 또는 서비스 제공자가 얼마나 일을 즐기는지를 언급하는 비중이 업워크에서는 4%, 수공예품 판매 사이트 엣시(Etsy)에서는 0.1%에 불과했다. 크몽 등 국내 프리랜서 플랫폼에도 작업 속도나 편리성 위주의 광고가 대부분이다. 일에 대한 애정과 작업의 즐거움을 전달하면 구매자는 결과물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고, 판매자는 더 높은 가격 책정이 가능해진다. 생산의 즐거움 효과는 개인 사업자나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브랜드 신뢰와 이미지 향상에 활용할 수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즐거운 문화
반스앤드노블 직원 추천도서. [사진 각 기업]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는 문화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부침이 심한 항공 산업에서 47년 연속 흑자를 달성한 것은 밝고 유쾌하게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고객의 서비스 품질 평가와 만족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덕이 크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유튜브를 통해 기장·승무원을 비롯해 항공기 정비사, 화물 관리자 등이 자신의 업무를 소개하며 즐겁게 임하는 일상을 전달한다. 꼬마 승객이 두고 간 곰 인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 이야기, 허리케인으로 가족을 잃은 반려동물을 구출하고 입양 보낸 이야기 등을 다룬 동영상은 직원들이 자기 일을 얼마나 진심으로 좋아하는지를 느끼게 한다.

미국의 식품 유통업체 트레이더조(Trader Joe’s)도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직원들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이 트레이더조 직원들은 어떻게 항상 활기차고 친절한지를 궁금해할 정도다. 크루 멤버로 불리는 직원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대화하기를 진심으로 즐기는지를 살펴보는 여러 차례 면접을 거쳐 채용된다. 소셜미디어에는 매장에서 와인·디저트부터 영화·종교 등 다양한 주제로 즐거운 잡담을 나눴다는 고객들의 이야기가 많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오프라인 판매만을 고수하는 트레이더조가 충성고객을 확보한 비법인 셈이다.

대형 서점 반스앤드노블(Barnes & Noble)이 최근 성장세를 회복한 데도 책을 사랑하는 직원들이 고객과 직접 소통하도록 해 끈끈한 관계를 구축한 효과가 크다. 오프라인 매장을 확장하며 직원을 선발할 때도 독서에 대한 열정과 그 배경에 관한 질문을 우선시했다고 한다. 책과 독서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직원이 직접 선정한 추천 도서를 손글씨로 소개하는 등 독립 서점식 전략을 적용해 진정한 이웃 서점으로 자리 잡겠다는 목적이다.

한국은 일과 즐거움의 거리 먼 나라
한국은 일과 즐거움의 거리가 먼 국가 중 하나다. 갤럽이 실시한 2021년 국가별 웰빙 조사에서 자기 일을 즐기는 비중이 일본 83%, 미국 80%, 중국 78%인데 한국은 65%에 머문다. 2024년 보고서에는 일할 때 한국인의 17%는 분노를, 13%는 슬픔을 자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다양한 시설과 복지 혜택으로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만큼 일 자체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에도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본인이 맡은 일을 진정으로 즐기는 직원의 모습은 고객 평가를 향상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여느 광고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즐거움과 같은 정서적 가치를 담은 인간의 노동은 AI와 자동화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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