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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진정] 이소의 계절

중앙일보

2025.06.2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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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소설가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 새들의 새벽 합창 시작도 그만큼 빨라졌다. 얼마나 시끄럽고 극성스러운지 잠을 설치기 일쑤다. 인간의 시계로는 한밤중에 더 가까운 시간인데.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지만, 이렇게까지 부지런 떨며 목청을 높여야 하나. 애써 잠을 청해보지만 달아난 잠은 다시 돌아올 기미가 없고. 이참에 나도 일찍 일어나 건강을 잡는 인간이 되어나 볼까, 아침 운동에 나섰다.

일단 강 쪽으로 방향을 잡고 어느 다리에서 턴하면 좋을까 가늠하던 순간. 난데없이 까치의 공격을 받았다. 번개라도 맞은 듯 정수리가 얼얼했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멈춰 섰는데, 호락호락 보내줄 것 같지가 않았다. 날 선 경고음과 함께 위협 비행. 이어지는 정수리 공격. 성난 까치 앞에서는 도망이 산책. 운동이고 건강이고 일단 피하고 볼 일. 얼마 가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까치 새끼 둥지 떠나는 6월
예민해진 어미에 운동길 봉변
새끼에 호된 교육 극제비갈매기
살아남아 9만㎞ 무사히 날기를

김지윤 기자
그러고 보니 이소(離巢·새의 새끼가 자라 둥지를 떠나는 일)의 계절. 집 앞 은행나무에 까치가 둥지를 틀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이웃집 까치의 자식 교육 현장을 목격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날기 연습은 뒷전이고 길바닥에 버려진 과자봉지나 들쑤시고 다니던 새끼와,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닦달하던 어미 까치의 울부짖음. 새끼가 도로 한가운데로 나가 뭉그적거릴 때, 저러다 차에 치이면 어쩌나 마음졸이며 응원도 해주었는데. 어쩌다 나는 침입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나. 그저 창문 뒤에 숨어 훔쳐만 봤을 뿐인데. 머리 좋은 까치에게 찍혀버렸으니 이제 새벽 운동은 물 건너갔다.

새들은 사람을 알아본다. 그저 알아보는 게 아니라 구별한다. 남극에서 한 조류 연구자가 유독 자신에게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도둑갈매기를 보고 궁금해졌다. 조사를 반복할수록 왜 그 강도가 점점 세지는 것인지. 도둑갈매기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실험을 해보았다. 둥지에 자주 방문한 연구자와 둥지에 가 보지 않은 연구자 둘이 짝을 지어 어미에게 접근한 다음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 보기. 같은 작업복을 입고 걸음 속도도 비슷한데, 누구를 공격할 것인가. 아무리 위장을 해봐라, 내가 찾나 못 찾나. 도둑갈매기의 선택은 정확하고도 집요했다.

새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이 처음은 아니다. 나도 남극에서 도둑갈매기에게 정수리를 찍혀봤고 뺨도 맞아봤다. 날갯죽지로 뺨을 얻어맞으면 아프기도 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상한다. 날개보다 위협적인 공격은 발차기. 새 울음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려보았다가, 과장을 좀 보태자면, 눈알을 뽑힐 뻔했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이마에 붉은 생채기가 났는데 부리에 쪼인 것이 아니라 발톱에 찍힌 것이었다. 바로 옆에 극제비갈매기 둥지가 있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극제비갈매기는 뒤끝이 아주 긴 새였다. 둥지에서 멀어졌는데도 분풀이 공격이 꽤 오래 이어졌다. 제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복싱선수처럼. 공격력으로 보나 집요함으로 보나, 무자비하게 날렵한 펀치가 남극의 새들 중에서도 단연 챔피언급. 극제비갈매기가 보유한 진짜 챔피언 타이틀은 바로 이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물.

북극제비갈매기는 북극 지역에서 번식을 마치고 남극으로 이동한다. 북극에서 남극까지는 직선거리로 1만9000㎞. 직선 경로가 아니라 다소 복잡한 경로로 이동하는데,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해 확인한 본 결과 평균 7만에서 8만㎞를 날았다. 그중 한 개체의 이동 거리가 9만1000㎞나 된다. 평균수명을 감안했을 때 북극제비갈매기는 일생동안 240만㎞를 이동한다. 지구에서 달까지 세 번을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 남극제비갈매기는 역방향으로 같은 거리를 이동한다.

북극과 남극을 오가는 이 장대한 이주를 통해 얻는 것은 두 번의 여름이다. 그만큼 태양 빛의 수혜를 가장 많이 누리고 사는 새라는 타이틀도 따라온다. 이주에는 그해 태어난 새끼도 예외가 없으므로, 겨우 솜털을 벗은 어린 새가 그 길을 완수하려면 나름의 준비가 필요할 터. 극제비갈매기들의 육아법은 혹독하기 그지없다.

어미는 바다에서 잡아 온 물고기를 새끼 입에 그냥 넣어 주지 않는다. 냄새만 살짝 맡게 하고는 둥지에서 먼 언덕 아래로 던져버린다. 새끼가 언덕 아래로 내려가 물고기에 가 닿으면 잽싸게 낚아채 다시 둥지 위로 옮겨 놓는다. 먹이는 닿을 듯 말 듯 멀어지고. 오르락내리락, 기진맥진 너덜너덜.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날개에 힘이 생기고 근육이 붙을 테다. 챔피언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한 극제비갈매기들만의 하드 트레이닝.

지금쯤 북극에서는 아기 극제비갈매기들이 열심히 언덕을 오르내리고 있겠다. 언젠가 내 이마에 발톱 자국을 냈던 극제비갈매기의 새끼도 살아남았기를. 살아남았다면 지금쯤 중장년이려나. 소서 대서 지나 입추가 되면 다시 남극으로 떠날 수 있기를, 진정으로 염원하게 되는 여름이다. 그러나저러나 나의 건강 잡기 아침 운동 본부는 언제 다시.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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