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 집권 초 인사 왜 실패했나
역대 정부마다 언제나 첫 인선이 가장 힘들었다. 지지율이 고공비행 중인 대통령(혹은 당선인)이 자신만만하게 회심의 인사 카드를 내뽑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터지면서 격추된 경우가 수두룩했다. 억지로 임명을 강행해도 고스란히 정권의 부담이 되고 말았다.
윤석열 “전 정권과 비교해보라”
오만한 발언으로 민심 돌아서
문재인, 검증 실패한 조국 감싸
박근혜, 개인 인연 위주로 인선
이명박, 강부자 논란으로 타격
집권 초 검증 시스템 부실 많아
오만한 발언으로 민심 돌아서
문재인, 검증 실패한 조국 감싸
이명박, 강부자 논란으로 타격
집권 초 검증 시스템 부실 많아
윤 정부 집권 초 지지율 급락
윤석열 정부는 정권인수위 시절부터 공직자 낙마로 호된 시련을 겪었다. 교육부 장관에 지명됐던 김인철 전 외국어대 총장은 딸과 아들이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는 게 특혜 논란을 일으켜 윤 전 대통령이 취임(2022년 5월 10일)도 하기 전에 사퇴했다. 경북대 병원장을 지낸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딸과 아들이 경북대 의대에 편입한 게 ‘아빠 찬스’라는 의혹을 받자 사퇴했다. 정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20대 국회의원(자유한국당)을 지낸 김승희 전 의원이 복지부 장관에 지명됐으나 예상치 못했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불거지면서 또 사퇴하고 말았다. ‘고시 3관왕’인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됐으나 제자 외모 품평 발언이 성희롱 논란을 일으켜 일주일 만에 물러났다.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음주 운전 논란이 있었지만, 윤 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케이스다. 그러나 ‘만 5세 입학 정책’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탓에 취임 34일 만에 사퇴하고 말았다.
이 무렵부터 윤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한 달 뒤 한국갤럽의 8월 첫 주 정례조사에선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24%(부정평가 66%)로 떨어졌다. 취임 초 50%대였던 지지율이 석 달 만에 반 토막 난 것이다. 직무 수행에 부정적인 이유로 가장 많은 23%가 인사를 꼽았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인사 파동 이후에도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고 결국 2년 뒤 비상계엄으로 이어갔다.
조국 조기에 경질했더라면
문재인 정부의 집권 초 고위공직자 낙마 리스트는 더욱 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로 정권인수위 기간 없이 곧바로 대통령 임기를 시작(2017년 5월 10일)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이 연세대 교수 재직 시절 부적절한 품행을 한 것이 문제가 돼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이 줄줄이 낙마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진보 성향의 학자였던 안경환 후보자는 20대 시절 상대의 동의 없이 몰래 혼인 신고를 한 사실이 드러나 큰 물의를 빚었다.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비상장 주식을 거래해 5억원가량의 차익을 거뒀는데 내부자 정보를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사퇴했다. 다만 이 후보자는 이 문제 때문에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하는 의견을 낸 이념 편향 전력이 문제가 돼 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되는 파란이 일었다.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건 사상 초유였다. 이외에도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후보자,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도 검증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처럼 고위 공직자의 연쇄 낙마 사태가 벌어지자 당시 야권은 청와대의 인사 검증 책임자인 조국 당시 민정수석의 교체를 강력히 요구했다. 당시 여권 일각에서도 조국 수석의 교체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조 수석을 철저히 감쌌고 오히려 2년 뒤엔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그 직후 불거진 ‘조국 사태’가 2022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패배의 씨앗을 뿌렸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문 전 대통령이 집권 초에 부실 검증의 책임을 물어 조국 수석을 경질했더라면 한국 정치사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땅을 사랑했을 뿐 투기 아니다”
박근혜 정부도 2013년 초 인수위 시절부터 인사 실패로 엄청나게 고생했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가 낙마했으며, 박 전 대통령이 삼고초려해 영입했다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이중국적 등의 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는 주식백지신탁 규정을 제대로 몰랐다며 직을 반납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무기중개업체의 고문으로 일했던 게 도마 위에 올랐고,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해외 비자금 계좌를 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각각 물러났다.
김학의 법무부 차관은 성 접대 논란(나중에 검찰이 무혐의 처분)으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방미 수행 중 여성 인턴을 성추행하는 사건을 일으키며 불명예 퇴진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이 자신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인사들을 위주로 직접 후보자를 낙점하는 사례가 많아 청와대가 체계적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조국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 수첩 속 인사라는 이유로 검증을 철저히 할 능력이 없거나 있는데도 하지 않은 청와대 검증팀은 즉각 갈아야 한다. 전자라면 지리멸렬 업무 무능이고, 후자라면 눈치 백단 업무 방기”라고 일갈했다. 본인도 4년 뒤에 똑같은 소리를 들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87년 개헌 이후 가장 압도적 대선 승리를 거두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도 시작부터 인사 구설로 위기를 맞았다. 2008년 조각 당시 이춘호 여성부,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와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등이 물의를 빚고 사퇴했는데 4명 모두 낙마 사유가 부동산 투기 의혹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땅을 사랑했을 뿐, 투기는 아니었다”(박은경), “유방암이 아니라서 남편이 오피스텔을 선물했다”(이춘호)는 화제의 발언을 통해 이명박 정부에 ‘강부자(강남 땅부자)’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선사했다. 그해 4월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당초 200석을 바라본다고 했다가 153석에 그친 것은 친박연대의 돌풍과 함께 정부의 인사 실패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민간분야 인사 검증 더 신경 써야
역대 정권의 집권 초 인사 실패를 살펴보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집권 초엔 인사검증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인데 높은 대통령 지지율에 취해 검증을 가볍게 보고 인사를 밀어붙이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인사는 늘 신중히 해야 한다.
둘째, 대통령이 직접 낙점한 인사는 웬만한 문제가 나와도 검증팀이 제동을 걸기 어렵다. 대통령 뜻에 거역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대통령은 인사 참모들이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셋째, 인사 검증은 크로스 체크가 필수이며 한쪽 말만 듣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특히 정권 초엔 대통령 최측근 그룹이 인사 검증을 주도하는데 성향이 비슷한 소수가 밀실 인사를 하다 보면 ‘내부자 편향’이 생긴다. 국민 정서엔 굉장히 심각한 일인데도 검증팀 내부에선 별일 아닌 것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넷째, 민간 분야에서 오래 일한 인사를 발탁할 땐 특히 검증에 신경을 써야 한다. 공직자는 국민 눈높이에 맞춘 자기 관리가 일상화돼 있지만, 민간 분야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발표한 12명의 내각 인선엔 교수 출신이 한 명도 없었던 게 눈에 띈다. 그동안 교수 출신들이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케이스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이를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하([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