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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의 시시각각] 탈원전과 민생지원금

중앙일보

2025.06.25 08:30 2025.06.2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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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수석논설위원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정(失政) 중 하나는 탈원전일 거다. 전력 확보가 필수적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탈원전은 무모한 결정이었다. 원전 생태계는 파괴됐고, 원전 산업은 수년을 후퇴했다. 문 정부 5년 동안 원전 산업 매출이 41.8% 감소했다는 연구(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도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거리가 있다. 탈원전은 과연 당시 우리 국민 대다수가 원한 것이었나. 그때 대통령 선거에선 얼마나 진지하게 논의됐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19대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조기 선거였다. 보수 진영은 분열했고, 탄핵이 다른 이슈를 압도했다. 대선 결과가 말해 준다. 문 후보가 41.08%를 득표한 데 비해 박 전 대통령이 속했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24.03%에 그쳤다(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21.41%). 그렇게 집권한 문 대통령은 취임 후 탈원전 드라이브를 걸었다.

탄핵 후 정권 ‘묻지 마 정책’ 펼쳐
‘승자독식’ 대통령 선거의 폐해
전 국민 소비쿠폰 선례 될까 우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오전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이 열린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 선거는 승자 독식의 결과를 낳는다는 데에 비극적 요소가 있다. 승자는 절대권력을 쥐게 된다. 주요 정책에 대해서도 국민의 뜻을 확인하지 않고 전권을 휘두른다. 그로 인해 나쁜 정책이 국가적 재앙을 부르기도 한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보름 만에 20조원의 나랏돈을 푸는 추경안을 내놨다. 그중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드는 돈이 13조2000억원. 소득에 따라 15만~52만원을 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나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소득 상위 10%도 15만원을 받는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증가 때문에 결사반대하던 관료들은 정권이 바뀌자 저항 없이 추경안을 뚝딱 만들어 제출했다. 역시 관료들의 영혼은 정권이 쥐고 있다. 야당이 극력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개의치 않고 통과시킬 태세다.

그러나 사실상 현금 살포에 해당하는 민생지원금 지급이 과연 국민의 뜻일까. 돌이켜보면 6·3 대선은 민생지원금에 대한 찬반을 물은 게 아니었다. 위헌적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위기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 그리고 수렁에 빠진 경제를 살리라는 것이 민심이었다.

유권자들이 경제 회생 수단으로 민생지원금을 원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대선 전엔 부정적 여론이 많았다. 2월 한국갤럽 조사에선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해 ‘지급해선 안 된다’가 55%로, ‘지급해야 한다’(34%)를 능가했다. 그러나 주간조선의 지난 13~15일 조사에선 민생회복지원금 정책 찬성이 64%로 반대(34%)보다 높게 나왔다. 조사기관이 달라 단순 비교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형성된 ‘한번 맡겨 보자’는 여론이 반영된 측면도 있을 거다.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지난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 범정부 TF' 1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엔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가 공감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현금 지급인지에 대해선 이론(異論)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분석(2020년)에 따르면 정부가 복지나 고용에 직접 돈을 쓰는 ‘정부 소비’가 국민에게 돈을 주는 ‘이전 지출’보다 약 세 배의 효과를 냈다. 코로나 때 1차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서도 투입 예산 대비 매출 증대 효과는 26.2~36.1%에 그쳤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나눠주는 지원금을 쓰고, 원래 지출하려 했던 돈은 아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번에 현금성 지원에 재정을 쓰기로 했다. ‘당선 축하금’ 얘기가 공연히 나오는 게 아니다.

탈원전이나 전 국민 민생지원금 모두 비합리적 선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탄핵 이후 집권한 정권의 ‘묻지 마 정책’들이다. 두고두고 경제에 큰 짐이 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탈원전이 원전 생태계를 망쳤다면 민생지원금은 재정의 둑을 허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현금 지급 주도 성장’이라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로 한국 경제가 발을 들여놓고 있다.





이상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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