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이란의 핵시설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치며 반격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실행된 미군의 핵시설 공습 직후 “핵시설이 완전히 파괴됐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다 CNN과 뉴욕타임스(NYT)가 24일 국방정보국(DIA)의 비공개 보고서를 인용해 “핵 프로그램을 수개월 정도 지연시켰을 뿐”이라며 “피해는 제한적이었다”고 보도하며 진실공방이 벌어지며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반박 공세의 선봉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그는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방금 이스라엘원자력에너지위원회가 공식 평가서를 보내왔다”며 “공습으로 (이란 포르도 핵 시설의)핵심 인프라를 파괴하고 우라늄 농축 시설을 완전히 사용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 이란과 대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란의 비핵화를 문서화하겠는 의미다. 그는 다만 “(핵협정)문서가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그것(핵시설)을 완전히 폭파했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 가능성과 관련해선 “언젠가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조만간 재개될 수도 있다”며 휴전 합의가 공고하지 않음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 이후 성사된 휴전 직후엔 “휴전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공습의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보도한 자국 언론들을 맹비난했다. 그는 “미국의 놀라운 힘을 통해 역사적 휴전이 체결됐다”며 “현재 언론의 신뢰도는 16%에 불과하고, 가짜뉴스인 CNN, NYT, MSNBC 등은 신뢰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분이 덜 풀린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길 비행기 안에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DIA 보고서 내용을 보도한 CNN 기자의 실명을 언급하며 “그는 즉각 CNN에서 ‘개처럼’ 쫓겨나야 한다”고 적었다. NYT에 대해서도 “그들은 정말 나쁘고 병든 사람들”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비난을 가한 언론 보도는 미 국방부의 정보기관 DIA가 평가한 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작성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 결과는 제한적이었다”는 보고서 내용이 아닌 이를 보도한 언론만을 문제 삼았다.
백악관과 정보기관들도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을 엄호하고 나섰다.
털시 개버드 국가정부국(DNI) 국장은 SNS에 “핵시설이 파괴됐다는 대통령의 언급은 새로운 정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며 “만약 이란이 (핵 프로그램) 재건을 택한다면 3개의 핵시설(나탄즈·포르도·이스파한)을 모두 재건하는 데만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새로운 정보의 출처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미 정보당국을 이끄는 개버드 국장은 지난 3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증거는 없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공습 전 “개버드는 틀렸다”며 정보당국의 평가를 부정하면서 궁지에 몰리자 “DNI의 판단은 대통령과 같다”고 말을 바꾼 상태다.
중앙정보국(CIA) 존 랫클리프 국장도 SNS에 올린 성명에서 “다량의 신뢰할 만한 정보”는 “이란의 핵프로그램이 최근의 정밀 공격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됐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그 역시 정보의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26일 오전 별도 기자회견을 통해 공습으로 이란 핵시설이 완전히 파괴됐다는 주장을 이어갈 예정이다.
백악관은 “핵시설이 괴멸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가짜뉴스”라는 제목의 자료를 냈다. 자료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이스라엘 평가 보고서의 결과와 함께 JD밴스 부통령, 헤그세스 국방장관, 댄 케인 합참의장,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의 유사한 주장이 함께 나열돼 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1급 기밀인 DIA 보고서 내용을 언론에 유출한 사람에 대해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나섰다”며 “이를 언론에 유출한 사람들은 감옥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전면 반박 과정에서 이란이 공습 전에 미리 다른 장소에 옮겨놨을 가능성이 있는 농축 우라늄의 향방과 핵 시설의 구체적 파괴 정도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공습 직후 “농축 우라늄을 미리 옮겨놨고, 공습에 의한 피해도 지상 부분에 국한돼 복구가 가능하다”고 밝혀왔던 이란은 이날 외무부 대변인을 통해 “이스라엘과 미국의 반복적인 공격으로 핵시설이 심각하게 손상된 것은 분명하다”며 입장을 바꿨다. 공습을 받은 쪽에서 “피해가 크다”고 밝힌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앞서 이란 의회는 유엔 산하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대한 협력을 중단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IAEA의 핵시설과 핵활동 사찰·검증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자국내 핵시설 피해 현황에 대해 공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는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란도 준비가 됐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고 있다”며 “이란과 포괄적인 평화 합의를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포괄적 합의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로 전용될 수 있는 농축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을 조건으로 대(對)이란 제재 해제와 상호 적대행위 중단 등의 내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