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발전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하면서 냉각 기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공기나 물을 활용한 전통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효율과 밀도를 앞세운 액침냉각 기술 경쟁에 정유사들이 뛰어들면서다.
GS칼텍스는 LG유플러스 하이퍼스케일급 데이터센터인 평촌2센터 내 실증 데모룸(시험공간)에 액침냉각유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 S30’를 공급한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공급을 시작으로 양사는 AI 서버 운영 안정성과 냉각 효율성 검증 작업에 돌입한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식품을 만드는 공장이나 화장품 원료에서도 쓰일 정도로 안전한 물질을 써 인체 유해성을 최소화했다”고 강조했다.
다른 정유사들도 이미 클라우드 기업 등과 함께 맞손을 잡고 액침 냉각 시장에 뛰어들었다. HD현대오일뱅크는 네이버클라우드가 진행 중인 액침냉각 프로젝트의 냉각유 공급사로 뽑히면서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를 공급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는 이미 2022년부터 미국 수조형 액침 냉각 기업 GRC에 투자하며 SK텔레콤 데이터센터에서 액침 냉각 기술 실증을 진행했다. 해외에서도 정유기업인 셸과 엑손모빌 등이 액침냉각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액침냉각은 ‘액체에 담가 서버를 식힌다’는 개념으로 냉각효율이 탁월하다. 기존의 공랭·수랭식 냉각은 공기나 물을 칩 근처로 순환시켜 간접적으로 열을 식히는 구조다. 반면 액침냉각은 서버 전체를 절연 냉각유에 직접 담가 열을 제거하기 때문에 발열 제어 속도와 에너지 효율이 모두 뛰어나다. 전력 소모는 공랭 대비 최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업계 관계자는 “냉각유가 서버와 직접 맞닿는 만큼 기기 소재와의 화학적 안정성, 작업자의 안전까지 모두 확보해야 한다”며 “불순물이 거의 없는 고순도 기유 기반 냉각유가 요구되기 때문에 정유기업에 강점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시장 진입 장벽도 까다롭다. 당장 서버 장비 구조 자체를 대폭 바꿔야 하고 액침 설비의 구축이나 유지 비용도 만만치 않은 탓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서버 등 고발열 장비에만 액침냉각을 적용하고 일반 서버에는 공랭·수랭을 혼용하는 ‘하이브리드 냉각’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SK가 아마존과 함께 짓는 울산 AI데이터센터에도 하이브리드 냉각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똑똑한 냉각이 중요한 이유는 데이터센터 성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뜨거워진 하드웨어는 손상이나 성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전통 냉각방식은 전력 소모가 크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전체 전력 소비의 2%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 중 약 40%가 냉각에 사용된다고 했다. 로이터는 지난 23일 “AI는 잊어버려라. 냉각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전력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액침냉각 등의 새로운 방식이 주목받는 이유다.
냉난방 업계도 데이터센터용 냉각 솔루션을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고 있다. 보일러 회사로 알려진 귀뚜라미그룹은 냉방·공조·냉각장치 기술을 집약해 지난해 ‘이머전 쿨링’이라는 액침냉각 기반 차세대 시스템을 새롭게 선보였다. 오텍캐리어는 데이터센터에 특화된 냉각수 분배 장치(CDU)는 물론 고효율 통합 냉방 인프라 솔루션도 함께 선보이며 시장 대응에 나섰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IT 장비 냉각 시장은 2030년 303억달러(41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