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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환의 한반도평화워치] 미국의 이란 해법, 북한 비핵화에 사용되는 것은 막아야

중앙일보

2025.06.26 08:20 2025.06.2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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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 이란 내 핵심 핵시설을 정밀 공격했다. 미국 본토에서 최첨단 벙커 버스터인 GBU-57을 탑재한 B-2 폭격기를 동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과거 미국이 어영부영하다가 북한 비핵화에 사실상 실패한 경험이 전격 공습을 서두른 배경 중 하나일 수 있다.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하는 모습을 본 북한은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주권 침해와 국제법 위반”이라며 규탄하고 나선 것이 이를 방증한다. 미국의 군사적 옵션이 북핵 해법의 마지막 수단으로 다시 검토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 거론되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이란 핵시설 기습 정밀 공격
대북 군사 옵션 사용 유혹 가능성
확전으로 한국에 재앙 될 수도
북핵 해법에 창의적인 노력 필요

미, 90년대 북 핵시설 공격 검토
미국은 한때 북한의 핵 개발 시설에 대한 공격을 검토한 적도 있다.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영변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을 가공하여 핵무기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외과수술식 도려내기·surgical strike)’을 계획했다. 이를 눈치챈 김영삼 정부는 북한이 공격을 받은 뒤 한국에 반격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극력 반대했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 노력으로 양측은 군사충돌 위기를 넘겼다. 윌리엄 페리 당시 미 국방장관은 “타격작전이 상정되어 있긴 했지만 최후의 수단이었다”며 “최선의 방법인 외교수단으로 먼저 풀어나갈 것을 우선으로 고려했다”고 회고했다(월리엄 페리 회고록, 『핵 벼랑을 걷다』). 이후 북·미는 협상을 이어가며 1994년 10월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끌어 냈다. 또 군사 옵션을 배제한 채 9·19공동성명(2005), 2·13 합의(2007), 2·29 합의(2012) 등을 통해 ‘동결 대 보상’ 방식으로 ‘북한의 위기 조성 뒤 협상 도달’이라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미국은 북한 핵을 ‘통제 가능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금지선(red line)’을 정하지도 않았다. 미국이 북한 붕괴를 기다리거나, 북한 위협론을 대중국 전략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인내’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북한은 기술적으로 핵무기 고도화의 속도를 높였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 이후 북한을 ‘핵 국가(nuclear power)’라고 지칭할 정도가 됐다. 어쩌면 미국이 확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란을 공격한 건 미국의 우유부단했던 대북 정책의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과 이란을 ‘악의 축’이라며 동일선상에 놓으면서도 ‘이중 잣대’를 적용한 데는 지정학적 요인과 정권의 성격을 고려한 측면이 크다. 중동에는 이란을 지원할 강대국이 없는 반면, 북한은 뒷배인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협상해 합의를 이루면 미국에 대한 위협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외교적 합의에 무게를 뒀다. 북한은 미국의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경계하면서도 위기와 대화를 적절히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1기 때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진 것은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를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고려한 측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 중반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30년이 지나도록 한반도에서 군사충돌은 피했지만, 북한 비핵화는 끌어내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브로맨스를 과시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친서를 북한 당국자들이 접수조차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체면을 구긴 셈이 된다. 어쩌면 예상보다 이란이 쉽게 휴전에 응하는 모습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해법, 즉 군사 옵션을 북한에 적용하려는 유혹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이미 핵탄두를 보유했을 것이란 평가가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반격을 우려한 미국이 쉽사리 북한 공격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미국의 군사적 옵션 사용이 현실이 된다면 확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에겐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

과거의 북핵 비핵화 방식 고집은 금물
이재명 대통령은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며 “북한과 소통 창구를 열고 대화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겠다”고 공약했다. 새 정부는 이전 진보 정부가 표방했던 ‘평화경제론’과 ‘포괄적·단계적 북핵 해법’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안보 환경은 많이 변했다.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평가를 차치하고라도 김정은이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를 주장한 뒤 남북 관계를 완전히 단절한 상황이다. 새 정부가 북·미 협상의 중재자나 촉진자로 역할하기 어렵게 됐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미 관계가 서방 대 반서방의 대결 구도로 확장되고, 생존의 중심고리를 미국으로 여겼던 북한이 북·러 동맹으로 대체했다. 트럼프 1기 때와 북한 내·외부 여건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여기에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하고 있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힘을 통한 평화와 억지력 회복’을 외교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새 정부가 시작하자마자 달라진 안보 환경과 북한 핵의 고도화, 여기에 미국의 군사 옵션을 막으면서도 비핵화를 달성해야 하는 고차 방정식 앞에 놓인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의 북핵 해법과 대북 정책은 이전 정부들이 추진했던 방식을 ‘경로 의존적’으로 답습하는 식으론 한계가 있다. 이전보다 두 배, 세 배의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핵 개발을 막지 못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나 ‘동결 대 보상’ 방식의 거래는 더는 작동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으로부터 본토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 사항’과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북한의 ‘요구사항’을, 즉 ‘안보 대 안보’를 교환하는 방식이 되도록 우리가 역할하는 게 대안이다. 북한은 체제 안전 보장과 대북 제재 해제를 포함하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쉽게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야 비핵화도 논의할 수 있다. 북·미 관계 정상화의 밑그림은 2000년 10월 북·미 공동커뮤니케와 2018년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이미 그려 놨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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