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는 살림살이를 대변한다. 살짝 엿보기만 해도 그 집안 식구들의 식습관은 물론 생활 양태, 성격, 건강 상태까지 가늠할 수 있다.
2008년 말 인천시 서구, K씨네가 살던 한국GM(당시 GM대우) 사원 아파트. 그 집 냉장고는 시큼한 김치 냄새로 그득했다. 고향에서 보내온 배추김치와 동치미, 깍두기가 칸칸을 지키고 있었다. 아이가 셋이었는데 음료 칸엔 우유 한 팩이 고작이었다.
한국GM 부평공장은 그해 12월 휴업에 들어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하면서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자 공장 문을 닫은 것. 이때 K씨가 받은 월급은 200만원 안팎. 은행 빚과 세금을 제하면 110만원에 그쳤다. 대리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그래도 월급은 나오니 (형편이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정까지만” 일했다.
또다시 철수설 휩싸인 한국GM
관세 폭탄 이어 노사 간 ‘전운’
규제·갈등으로 쫓아내는 건 악수
지난 1년은 내내 훈훈했다. 일감이 밀려 잔업과 야근이 잦았다. 올해엔 매달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하고 ‘25% 관세’(3월) 소식이 날아오자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러더니 ‘90일 유예’(4월)가 발표되자 급반전, 신차 생산 물량이 추가로 3만 대 배정됐다. 그를 포함한 동료들은 요새 특근을 합쳐 주 6, 7일 일한다. 주간 근무 때는 하루 2시간 잔업도 한다. 세금·보험료 떼고도 월 600만~700만 원대 급여를 받는다. 지난달 자동차 25% 관세가 발효됐지만 한국GM은 선전했다. 생산 대수 4만9594대로 전년 동기 대비 0.4% 늘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은 정반대다. 노조는 벌써 머리띠를 동여맨 상태다. 지난 18~19일 파업(쟁의행위) 찬반 투표는 88.2%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역대 최고치란다. 24일 임금 교섭은 평행선 대치로 끝났고, 30일부터는 노조 간부들이 철야 농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달 전국 9개 직영 서비스센터와 부평공장 내 유휴 자산을 매각한다고 발표한 게 노사 갈등의 직접 도화선이 됐다. 아니, 시작은 관세 폭탄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49만 대의 완성차를 만들었다.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레일블레이저,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주로 생산한다. 모두 가솔린 차종이다. 이 가운데 42만 대(84%)가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가격에 예민한 소형차라 25% 관세는 수익에 직격탄이다.
이런 와중에 돈 되는 자산을 팔겠다고 했으니, 회사 안팎에서 ‘철수 시그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과장됐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부평·창원공장은 효율성 높은 생산기지다. 연구개발 법인으로 분리된 GM테크니컬센터 코리아(GMTCK)는 본사에서도 ‘가성비 갑’으로 평가받는다. 산업은행에서 2018년 8100억원 공적 자금(지분율 17.02%)을 수혈받으면서 따라붙은 ‘10년간 사업을 유지한다’는 꼬리표도 여전하다.
한국GM은 ‘무표정 모드’다. 헥토 비자레알 사장은 “현재 비즈니스는 급변하고 있다”며 “멕시코의 생산 물량을 미국으로 이전하기로 한 것이 그런 예다. 조만간 멕시코에서 수많은 사람이 실직할 것이다. 중국과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은 반대”라고 말했다(26일 노조와의 대화). 타협점을 찾으면서도, 해외 상황을 거론하며 적당히 으름장도 놓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신차 생산 계획이나 전동화 전환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업계에선 “이런 모호함 전략을 통해 2028년 정부와의 협상에서 지원을 더 받아내려는 의도”라고 풀이한다. 그러니 투자에도 인색하다. 이 회사가 신입사원을 뽑은 지는 10년이 지났다. 사내에서조차 “건물 외벽 페인트칠도 제때 안 한다. 돈 들어가는 건 질색”이라는 푸념이 나온다.
관세 이슈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지원은 팍팍 해야 한다. 요컨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다. 공장 신·증설과 용지 매입 등에 편의를 제공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식이다. 과감한 규제 개혁도 필요할 것이다. 사업성이 낮아 철수하는 게 아니라 낡은 규제, 갈등 때문에 쫓아내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한·미 관세 협상이 조속하고 의미 있게 해결돼야 한다. 그래야 불확실성을 걷어낼 수 있다.
K씨가 강조하는 일자리 얘기다. 그가 한국GM(당시 대우자동차)에 입사한 것은 1989년. 착실하게 저축해 5년 만에 18평 아파트를 장만했다. 하지만 그룹이 좌초하면서 2001년 2월 1700명이 정리해고됐다. 그도 그중에 포함됐다. 2004년 9월 복직할 때까지 3년 7개월 새 여러 차례 자영업에 도전했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때 분명히 깨달았어요. 가장 중요한 건 일자리입니다.” 한국GM이 직접 고용한 인원은 1만 명, 3~4차 협력업체를 포함하면 최대 20만 명에 이른다.